H.O.T. 프롤로그

2020. 5. 2.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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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H.O.T. 입니다. 키워주세요. "

 

그룹명 H.O.T
High-five OTeenagers
멤버 문희준
( 文熙俊 / 78 / 서울특별시 강남구 / B )


장우혁
( 張佑赫 / 78 / 경상북도 구미시 / O )


토니 안
( 안승호 [安勝浩] / 78 / 서울특별시 용산구 / O )


강타
( 안칠현 [安七炫] / 79 / 경상북도 예천군 / B )


이재원
( 李在元 / 80 / 서울특별시 강동구 / A )
데뷔 1996년 9월 7일
정규 앨범 [We Hate All Kinds of Violence]
활동기간 1996년 9월 7일 ~ 2001년 5월 13일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
공식색 하얀색
팬덤 Club H.O.T

 


 

개요

1996년 9월 7일에 SM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데뷔한 대한민국의 5인조 보이그룹이다.

2001년 5월에 해체되었다가, 2018년 2월에 재결합했다.

데뷔하자마자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1990년대 후반 대한민국 대중가요계를 평정한 전설의 아이돌 그룹으로 중화권 시장까지 사로잡아 한류의 문을 연 그룹이다.

아이돌 그룹 최초로 연간 최다 음반 판매량 달성, 방송 3사 가요대상 그랜드 슬램 달성, 자작곡으로 대상 수상, 국내가수 최초로 잠실 주경기장 공연 매진, 역대 최대 팬클럽 등 전설적인 아이돌답게 수많은 기록을 남겼다.

1996년 9월 7일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 첫 데뷔하여 1집 타이틀곡인 학원폭력을 주제로 한 갱스터 랩 '전사의 후예'로 주목을 받았다.

1996년 10월 중순경부터 KBS 가요프로에서 10위권, MBC에서는 4위에 안착했으며 1996년 11월 17일 SBS TV가요20에서는 3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이어서 후속곡인 '캔디'가 메가히트급으로 대박이 나면서 최정상의 인기를 거머쥐게 되었고, ‘행복’, ‘We are the Future’, ‘열맞춰’, ‘빛’, ‘아이야’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90년대 후반을 대표하는 아이돌 그룹으로 자리 잡았다.

 

2020년 현재는 다양한 컨셉의 아이돌 그룹들이 춘추전국시대를 이루고 있지만 1990년대 후반은 그냥 H.O.T.로 10대들이 단결할 수 있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나마 유일한 라이벌로 젝스키스가 활동했지만, 실질적인 인기는 H.O.T.의 적수가 될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었다.

H.O.T.의 대성공으로 한국 대중가요계는 빠른 속도로 아이돌이 주도하는 가요계로 재편됐다.

당장 젝스키스부터가 ‘타도 H.O.T.'를 기반으로 등장한 그룹이다.

그외의 수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대중음악을 다루는 프로그램엔 아이돌 그룹들이 거의 점령하게 되었다.

1990년대 후반 대중가요계의 판도를 바꾸는 변화의 시초격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돌 그룹이다.

1987년에 데뷔한 소방차가 한국 아이돌의 태동이었고 1992년에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이 대중문화와 가요계의 판도를 바꾼 K-POP의 시발점이라면, H.O.T.는 아이돌 그룹의 정의를 완성하며 본격적인 아이돌 시대를 연 그룹이다.

현재 거의 모든 아이돌 그룹들이 담당하고 있는 구성들인 메인 보컬(강타), 서브보컬(문희준, 토니 안), 래퍼(장우혁, 이재원) 등의 구성이나 성격적/캐릭터적 설정들인 만능 재주꾼 리더(문희준), 대표 비쥬얼(강타), 댄디한 귀공자(토니 안), 쿨한 카리스마(장우혁), 순수한 막내(이재원) 등 현재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에게 등장하는 기믹과 컨셉적 역할들을 최초로 완벽히 구현한 그룹이다.

실제로 2집의 수록곡인 Go! H.O.T.! 의 가사에서 멤버들의 이미지를 위트 가이 희준, 섹시 가이 강타, 무드 가이 토니, 와일드 가이 우혁, 샤이 가이 재원이라고 칭했으며 1집 캔디 때부터 멤버 각자에게 고유 번호와 고유 컬러를 부여했다.

 

H.O.T.의 아이돌 그룹의 구성은 나중에 거의 모든 아이돌 그룹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당장 H.O.T.가 데뷔하고 바로 데뷔한 젝스키스, NRG, 신화, god 등 다른 1세대 남성 아이돌 그룹들도 H.O.T.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나 당시 아이돌 업계에서 나름 선구자였던 DSP의 이호연 사장은 H.O.T.의 성공을 보고 급하게 듀엣에서 6인조 그룹으로 노선을 수정해 젝스키스를 데뷔시켰다.

 

평가

1990년대 후반만 해도 가요계에서 '아이돌'이란 단어조차 생소하였다. 당시에는 '아이돌'보다는 '고교생 그룹', '하이틴 스타', '10대들의 우상' 등으로 불렸다.

그중에서도 한국형 아이돌의 시초이자 얼굴격이었던 H.O.T.는 언론과 평론가들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10대들은 왜 이들에게 열광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이들의 인기요인을 분석하는 칼럼이나 뉴스 보도도 등장하였다.

부정적인 평가로는, ‘기획사의 철저한 전략으로 만들어진 상품이다’, ‘10대 청소년들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이 아닌가 염려가 된다’, '외양에 치중되어 있다', ‘기획사에서 만들어주는 음악을 한다.’등이 주요 비판 내용이었다.

한 방송사에서는 학업에 충실해야할 학생들이 돈벌이에 이용돼서는 안된다며 고교생 가수의 출연을 금지한다는 방침을 발표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기사그랬던 방송사가 이제는 ‘더유닛’이라는 아이돌 육성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니 세상 참 많이 변했다

H.O.T.의 대성공으로 아이돌 그룹들이 가요계를 장악하게 되자 성인층 가수들의 설 자리가 없다는 비판도 많았다.

하지만, 성인층 가수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 실질적인 이유는 H.O.T.가 데뷔하기 이전부터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이후에 한국 대중가요계의 판도가 변했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분석도 있었다. 라디오 음악PD들이 집필한 <에쵸티 즐거운 반항>이란 책에서는 이들의 인기요인을 ‘차별화와 일체화’ (각기 개성이 뚜렷한 멤버구성으로 ‘다름’을 내세우면서도 집단 유행에 뒤쳐지지 않는 10대들의 특성을 충족), ‘재빠른 변신’ (곡마다 달라지는 빠른 컨셉 변화로 급변하는 젊은이들의 취향에 기민하게 대응), ‘착한 이미지’(H.O.T.에 열광하는 자녀들을 걱정하는 부모들을 안심시키고 좋아해도 무해하다고 허락하게끔 만든 모범생 이미지)라고 분석하였고 이전까지 이런 지위를 누린 가수는 없었다고 평하였다.

데뷔 초반에 들었던 여러 비판들이 채찍질이 되었던 것인지 H.O.T.는 해마다 성장해갔다.

안무는 처음부터 문희준 장우혁이 거의 다 만들었고, 랩과 가창력도 앨범을 낼 때 마다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멤버들은 데뷔 초부터 스스로 작곡 공부를 하였고 3집부터 멤버 전원이 앨범에 자작곡을 싣기 시작했는데 작사, 작곡에 더불어 편곡까지 직접 하면서 음악에 더욱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5집에 이르러서는 앨범의 전곡을 멤버들의 자작곡으로 채우고 올 프로듀싱을 하였는데, 이는 아이돌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타이틀곡이나 후속곡도 자작곡으로 활동하였다.

 

영향과 파급 효과

당시 영세 기획사였던 SM엔터테인먼트를 한국 최고의 기획사로 키워낸 그룹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혜성같은 등장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10대 팬덤을 타켓으로한 기획형 아이돌의 시작이다. 이때부터 대형기획사가 철저하게 사전분석하고 조립한 아이돌의 댄스뮤직이 대중문화를 석권하고 한류의 시작이 된다.

이 때 중화권에서의 인기도 엄청나서, 1998년 한국가수 최초로 중국에서 음반발매를 하였으며 한류현상의 시초가 된다. 2000년초에는 중국에서 한국가수 최초로 베이징단독콘서트를 개최하였고 중국언론에선 한류가 몰아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관련기사 인기의 영향으로 중국에서 한국상품들이 특수를 누리기도 했다.기사 2000년말에는 중국에서 농심의 광고모델을 하였으며영상 '당대가단'이라는 중국음악잡지에서 해외인기가수 순위 1위를 장기간 유지할 정도로 인기가 상당했다.기사 중국 언론과 매체에서는 한국은 김치와 H.O.T.의 나라라고 소개하기도 하였으며 당시 중국의 H.O.T. 팬 수가 800만명이었다는 설이 있을 정도였다.

따로 활동하지 않던 일본이나 북미와 유럽권에서도 매니아층이 있었으며, 미국 MTV VMA에서는 1999년에 'international viewer's choice'라는 부문에서 H.O.T.의 '열맞춰' MV가 수상하였다. 관련기사

해체 후에도 jtL이나 솔로 활동으로 중화권을 비롯해 인도, 싱가폴, 베트남 등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누리며 오늘날 글로벌한 KPOP 인기의 기반을 닦게된다. 

 

<시사저널>에서 발표한 문화 • 스포츠인 영향력 순위에서 1999년 2000년에 연달아 순위에 들었으며, 특히 1999년은 배우, 가수를 통틀어 연예인 중에서는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하였고 아이돌 그룹 최초로 문화 • 연예인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음반판매량은 1집 100만장으로 시작해서 2집이 150만장, 3집이 110만장에 4집 138만장, 5집 88만장으로 네 개의 밀리언셀러 앨범 기록을 세웠다.

“돌멩이에 H.O.T.이름만 새겨도 팔린다.”는 말이 생길정도로 H.O.T.관련 상품들이 불티나게 팔렸다. 1집 캔디 무대에서 착용했던 장갑, 가방, 모자, 먼지인형집게 등을 착용한 학생들을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그외에도 H.O.T. 사진이 들어간 공책, 지우개, 편지지, 저금통 등 온갖 학용품과 팬시상품들이 팔렸다. 

1999년에는 H.O.T.자서전도 출간되었다. 출간 열흘만에 20만권이 팔려 역사상 최단 기록으로 베스트셀러 1위를 달성하며 화제가 되었다. 

한불 화장품과 손을 잡고 H.O.T. 향수도 발매하였는데 출시 이틀만에 10만개가 매진되었다. 이 무렵엔 DNA 목걸이도 판매되었다.

H.O.T. 캐릭터를 그려넣은 ‘틱톡에쵸티’라는 음료수도 발매되었다. 출시 5개월만에 4500만캔이 팔려 폭발적인 판매량으로 당시 음료업계 1위였던 코카콜라의 판매량을 앞질렀다. H.O.T.세대라면 소풍 날 이 음료수를 마셔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2000년엔 H.O.T.를 모델로 기용한 르까프 나이키를 누르고 동종 업계 1위에 오르는 이변을 일으켜 주목을 받기도 했다.

 

나이키는 국내 진출 후 5년이 넘게 1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국내 토종 브랜드 르까프가 H.O.T.를 모델로 기용한 후 5개월만에 이를 따라잡고 1위에 오르는 기록을 만들어낸 것이다. 르까프 측은 당연히 계약 연장을 원했으나 이후 H.O.T.가 바로 해체를 해 재계약을 할 수 없었다.

2000년엔 '평화의 시대'라는 한일합작 3D입체 영화에도 출연했는데 흑역사 흥행 실적 약 2만4천이라는 성과로 묻혔다. 보다 보면 정말 열심히 연기하는 멤버들이 불쌍할 지경. 아이러니하게도 멤버들이 프로듀싱한 평화의 시대의 OST 음반은 30만장이 팔렸다고 한다.

 

1998년, IMF외환위기에 해외관광객 유치를 위한 국가홍보CF에 대중음악 보이그룹으로는 유일하게 출연하였다. 해당영상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후보 시절에도 좋아하는 가수로 H.O.T.를 꼽았고기사참조, 1998년 10월에는 H.O.T.를 청와대에 초청하여 오찬을 함께하였다. 오찬 소감 영상(30초 부터)

그 외에도 당시 해외가수에게만 대관되던 잠실주경기장에서 최초로 단독콘서트를 한 국내가수이며 콘서트를 이유로 지하철 막차 시간을 바꾸고 교육청에서 조퇴금지령을 내린 가수였다. 그리고 조용필 다음으로 많은 잠실주경기장 단독콘서트를 한 가수이기도 하다.

2018년 10월 13일~14일에 행해진 재결합 콘서트의 영향으로 명절보다 더 많은 인원이 기차를 이용하여 SRT이용객 수 최고치를 경신하였다. 기사참조

 

수상 경력

최전성기의 시작이었던 1997년도에는 아이돌 그룹으로서는 최초로 음반판매량 1위를 기록해 골든디스크 시상식 대상을 수상했으며 그에 더해 MBC 한국가요제전, SBS 가요대전, 서울가요대상, KMTV 가요대전 대상을 수상하였다.

최전성기의 정점이었던 1998년도에는 당시 방송 3사 모든 연말 가요프로에서 대상을 수상하여 아이돌 그룹으로서는 사상 최초로 그랜드슬램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에 더해 서울가요대상에서도 젝스키스와 함께 공동으로 대상을 수상하였다.

 

재결합

2014년 11월 무한도전 토토가에서 H.O.T.의 섭외를 위해 강타가 출연했는데, 강타는 H.O.T.의 재결합을 조심스럽게 보고 있는 시각이 비춰졌고 결국 토토가 출연은 불발되었다.

하지만 토토가 본편에서 무한도전 멤버들이 H.O.T. 코스프레를 하였고 이후 토토가에 출연했으면 싶은 가수 설문조사에서 H.O.T.가 1위로 뽑히기도 하였다.

꾸준히 제기되던 재결합설이 2016년 데뷔 20주년을 맞아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있다.

특히 2016년 4월, 당시 라이벌이었던 젝스키스가 무한도전 토토가2 - 젝스키스를 통해 재결합을 공식화함에 따라 H.O.T. 재결합에 대한 관심과 기대도 증가하게 된다.

또한 토토가2 - 젝스키스 말미에 유재석과 하하가 토토가 3를 예고했던 장면을 통해 사실상의 최유력 후보로도 거론되었던 상황이었고, 멤버들과 이수만 프로듀서가 비밀리에 회동을 가졌다는 기사를 통해 더욱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이후 재결합에 관한 구체적인 논의는 거의 90%까지 진행되었으나 최종적인 협의 과정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 내부 측의 주장.

이로 인해 그동안 소문만 무성하게 나돌았던 20주년 프로젝트는 오랜 설왕설래 끝에 무산되고 만다.

이후 라디오 스타 젝스키스 편에서 김구라가 H.O.T. 재결합 무산의 원인이 어느 한 명에게 있다는 찌라시를 폭로한 이후 대다수는 여러 정황상 장우혁일 것이라 추측하기도 했으나 장우혁은 방송을 통해 수차레에 걸쳐 의혹을 일축한 바 있다.

15년 동안 빈번하게 논의와 무산을 거듭해온 재결합설과 문희준의 결혼에서 비롯된 일련의 사건으로 인한 팬덤 내 갈등이 팽배했던 가운데 2018년 1월 23일,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시즌 3 기획 차 멤버 전원이 회동을 열었다는 공식입장을 발표하였고 6일 뒤, 마침내 토토가3 - H.O.T.의 방송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토토가에서 말했던 팀원들과의 상의 끝에 17년만의 재결합 콘서트가 확정되었다.

해당 콘서트의 정식 명칭은 FOREVER HIGH-FIVE OF TEENAGERS이다.

본래는 팀 이름을 따서 그대로 FOREVER H.O.T.로 정해졌으나 현재 상표권 문제로 자신들의 영어 약자를 풀어서 표기했다.

다만 해당 표기도 팀명의 상표권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 콘서트 명칭이 바뀌자마자 이 풀어서 표기한 명칭에 대해서도 상표권 출원을 시도하면서 향후 팀명과 관련한 상표권 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커지게 되었다.

2018년 10월 13일과 10월 14일, 무한도전 토토가에 이어, 양일간 잠실 주경기장에서 콘서트를 개최했다.

그리고 2019년 9월 20일 ~ 22일 3일간 고척돔에서 단독 콘서트가 개최되었다.

작년 2018년 콘서트의 #NEXT_MESSAGE2019 떡밥은 이 콘서트였던 것.

해당 콘서트까지가 공연 기획사와 계약한 회차였다고 하므로 2020년에도 이들을 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다만 2018년 콘서트에 이어 2019년 콘서트에서도 계속해서 기존 앨범 수록곡과 솔로 신곡으로 콘서트를 진행하였는데, 멤버들도 향후를 생각하면 당연히 그룹 신곡을 내야 한다는 대전제에 대해 공감하고 있으나 여러 가지 사정상 신곡을 내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2019년 콘서트에서는 기존에 단체 안무를 단 한 번도 공개한 적 없는 Do or Die의 안무를 신규 레퍼토리로 선보여 팬들의 아쉬운 마음을 대신했다.

하지만 아직 무대를 보지 못한 그룹 수록곡들과 솔로곡들도 매우 많고 그저 콘서트만 해줘도 감지덕지라는 팬들도 많다.

 

2019년 콘서트 이후로는 개인활동 위주로 활동하고 있다. 2020년 11월 MBC 예능 <안싸우면 다행이야>에 문희준과 토니 안이 함께 출연하였다. 2021년 1월 1일 토니 안의 인스타그램 라이브에서 콘서트를 해달라는 팬들의 요청에 '나도 콘서트 진짜 하고 싶다. 우리 멤버들도 다 하고싶어하는데...'라고 응답했다. 2021년 3월 7일 SBS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에 강타, 이재원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출연하였다.

 


 

정규 앨범
집수 앨범명 활동곡 발매일
1 We Hate All Kinds of Violence 전사의 후예 / 캔디 1996년 9월 7일
2 Wolf and Sheep 늑대와 양 / 행복 / We Are The Future 19977월 5일
3 Resurrection 열맞춰 / 빛 19989월 25일
4 I Yah! 아이야! / 투지 / 환희 19999월 15일
5 Outside Castle Outside Castle / 그래! 그렇게 200010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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