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걸그룹/S.E.S | 핑클 | 쥬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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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클 프롤로그202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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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이에스 SES 프롤로그2020.05.03
쥬얼리 프롤로그
1기 | 박정아 | 이지현 | 정유진 | 전은미 |
2기 | 서인영 | 조민아 | ||
3기 | 김은정 | 하주연 | ||
4기 | 박세미 | 김예원 |
그룹명 | JEWELRY 쥬얼리 |
멤버 | L 박정아 (1~3기) ( 朴貞雅 / 81 / 경상북도 영천시 / A ) 이지현 (1~2기) ( 張佑赫 / 83 / 경기도 고양시 / B ) 서인영 (2~3기) ( 徐寅永 / 84 / 서울특별시 송파구 / O ) 조민아 (2기) ( 趙敏兒 / 84 / 경상남도 창원시 / B ) 하주연 (3~4기) ( - / 86 / 서울특별시 / A ) 김은정 (3~4기) ( - / 86 / 인천광역시 / B ) 김예원 (4기) ( 金藝元 / 89 / 경기도 성남시 / O ) 윤진솔 (4기) ( 박세미 / 90 / 광주광역시 / A ) |
데뷔 | 2001년 3월 30일 정규 앨범 [Discovery] |
활동기간 | 2001년 3월 30일 ~ 2015년 1월 7일 |
소속사 | 스타제국 |
공식색 | 펄 네이비 |
팬덤 | 보석상자 |
개요
2001년 데뷔해 14년 동안 활동한 대한민국의 걸그룹.
그러나 팬덤보다는 대중적 인기에 치중한 나머지 대표곡을 꼽으라면 'Again', '니가 참 좋아', 'Superstar', 'One More Time' 4곡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중적 인기는 확실해서 'Superstar'가 1위를 수상한 것을 기점으로 'One More Time' 또한 뮤직뱅크 7주 연속 1위라는 기록을 세우며 대상을 수상하는 저력을 보였다.
'모를까봐서' , 'Love Story' 같은 발라드곡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소속사는 그 악명 높은 스타제국이었다.
놀라울 정도로 기획력이 형편없었음에도 가끔씩 한두 명씩 얻어걸리는 것을 보면 천운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팬덤 관리 능력이 최악인데 데뷔 후 박정아가 탈퇴할 때까지 9년간 단독 콘서트 한 번 없었다.
공식 팬카페와 팬카페가 따로 놀고, 회원수를 합쳐야 만 명이 채 안 되는데 사실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Superstar'로 전성기를 구가할 때 팬클럽 '보석상자'는 회원 수가 10만 명에 이르는, 팬덤이 아주 작다고는 할 수 없는 그룹이었다.
하지만 2006년 이지현의 탈퇴로 흔들리더니 운영자가 팬카페를 돈 받고 팔아버렸다.
게다가 조민아마저 탈퇴를 해버리면서 쥬얼리 해체가 기정사실화되면서 팬덤은 사실상 붕괴된다.
거기다 소속사의 방관 정책까지 한 몫 했다.
'One More Time'으로 대박을 쳐놓고 팬덤 관리도 제대로 안 하고 행사나 돌리고 있으니...
그룹의 콘셉트
이 그룹을 뭐라 정의하긴 어려운데 쉽게 말해 그냥 대세를 잘 따르는(...) 그런 그룹이었다.
즉, 음악적으로 크게 특색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소속사가 영세하다 보니 대중성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그 이유.
즉, 대중성에 영합하는 센스 있는 곡 선정과 컨셉트로 승부하는 그룹이라는 것.
그래도 5집 즈음에는 걸그룹 중에서도 굉장히 안정적인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6집에서는 기획력이 이전에 비해 다소 못 미쳤고 그룹 자체가 오래되어 브랜드가 하락하다 보니 그리 좋은 성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박정아와 서인영이 있을 때는 음색 자체가 타 걸그룹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보니 팜므파탈이나 여전사 컨셉을 해도 상대적으로 강렬해보이는 효과가 있던 것은 사실.
어찌되었든 간에 빈약한 팬덤과 멤버들의 낮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앨범을 낼 때마다 어느정도 히트했다는 것은 어느정도 시사할 점이 있음을 보여준다.
충성심 높은 여성 팬덤을 다수 보유할 수 있는 남성그룹과 달리, 라이트한 남성 팬층이 많은 여성 그룹은 대중성이 우선이라는 것.
실제로 2008년 'One More Time'이 대박을 쳤을 때 팬카페 회원수가 3천명이었다. (그 이유는 슈퍼스타가 초대박을 친 후 공백기에 들어갔던 2006년 즈음 10만명 가까이 육박하던 팬카페의 주인이 카페 매매를 했다.)
정규 앨범
집수 | 앨범명 | 타이틀곡 | 발매일 |
1 | Discovery | 이젠 | 2001년 3월 30일 |
2 | Again02 | Again | 2002년 7월 31일 |
3 | Beloved | 니가 참 좋아 | 2003년 7월 5일 |
4 | super star | Super Star | 2005년 3월 15일 |
5 | Kitchi Island | One More Time | 2008년 2월 20일 |
6 | Sophisticated | Vari2ty | 2009년 8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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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클 프롤로그
그룹명 | Fin.K.L 핑클 (Fine Killing Liberty) |
멤버 | L 이효리 ( 李孝利 / 79 / 충청북도 청원군 강외면 / A ) 옥주현 ( 玉珠鉉 / 80 / 서울특별시 강남구 / O ) 이진 ( 李眞 / 80 / 경기도 수원시 / B ) 성유리 ( 李在元 / 81 / 독일연방공화국[서독] / O ) |
데뷔 | 1998년 5월 20일 정규 앨범 [Blue Rain] |
활동기간 | 1998년 5월 12일 ~ 2005년 1월 10일 |
소속사 | 대성기획 (現 DSP미디어) |
공식색 | 펄 레드 |
팬덤 | 핑키 |
개요
1998년 5월에 대성기획 소속으로 데뷔한 대한민국의 4인조 걸그룹이다.
지금까지도 많은 걸그룹 후손들의 컨셉트와 이미지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그룹이다.
핑클은 청순함, 귀여움, 성숙함으로 어필하며 여러 곡에서 매번 다른 컨셉트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핑클이 만들어낸 걸그룹 컨셉트의 구도는 지금도 많은 걸그룹들이 시도한다.
그리고 2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S.E.S와 함께 후배 걸그룹들이 롤모델로 삼고있는 그룹이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2000년대 중반 이후에 등장했던 2세대 및 그 이후 세대 걸그룹은 말할 것도 없고, 핑클과 S.E.S가 등장한 직후에 등장했던 1세대 걸그룹들마저도 이들을 롤모델로 삼았다는 데 있다.
그만큼 전설(레전드)로 통하고 있다는 것.
또한, 마지막 정식 활동 후 14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신곡 '남아있는 노래처럼'이 각종 음원 사이트 상위권을 차지하는 등 두드러지는 존재감을 자랑하는 그룹이다.
정규 4집과 마티즈 2 광고모델 계약 종료 이후 활동도 중단하고 핑클이 지금까지 음반활동이 없어서 해체한 그룹이라고 얘기를 많이 하는데 앞에서 언급했지만 핑클은 공식적으로 아직 해체 안 한 현재 한국 최장수 아이돌 걸그룹이며 또한 멤버 전원이 핑클은 아직 해체 안 했다면서 단호하게 못박고 있다.
그런데 최장수라는 말은 라이벌인 S.E.S.가 재결합하는 바람에 애매해져버렸다.
하지만 각자 소속사도 달라졌고 서로의 활동 범위가 너무나 판이해졌기 때문에 2005년 디지털 싱글 'FIN K.L' 이후 지금까지 후속 앨범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해서 사실상 해체 상태나 다름없는 상황이긴 하다.
그래도 2007년 이효리 생일파티와 2008년 성유리 생일파티 때 네 명이 함께 출연하거나 이효리 첫 번째 단독 콘서트 때 이진, 성유리, 옥주현이 깜짝 출연해 넷이 이벤트 무대를 벌인 적은 있다.
성유리는 핑클 얘기가 나오면 되도록 언급을 피했으나, 2008년까지 여전히 핑클 멤버임을 수차례 못박아왔고, 2013년 DSP festival에선 영상으로 "앞으로도 계속 저희 핑클도 많은 관심 부탁한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진은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으나, 2009년 이진이 핑클 결합을 원치 않는다는 오보가 난 후 오보라는 사실을 피력하기 위해 팬사이트에 글을 쓴 적도 있다.
특히 이효리, 옥주현의 경우엔 매년 꾸준히 "핑클은 해체하지 않았다"고 말을 해왔다.
과거 소속사인 DSP조차 "현재 소속사가 다를 지라도 굳이 핑클이란 이름으로 넷이 활동하는 것에 대해 제재하지 않겠다"고 했다.
게다가 2004년 3월 DSP 사장 이호연이 특허법인을 통해 핑클 상표를 등록하기 위해 서류를 제출하였으나 2005년 6월 거절당한 기록이 남아있다.
즉, 핑클이라는 이름의 상표권은 DSP에게 없을뿐더러, 그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므로 굳이 앨범이 나오지 않더라도 이런 산발적인 이벤트는 일어날 수도 있다.
사실 핑클의 위력은 각자의 길을 떠난 후에 증명되었다.
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그룹 해체 후 솔로로 전향할 때 큰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핑클의 멤버들은 모두 자신의 새로운 자리를 확고히 잡았고, 연예계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계속 다져나갔다.
2019년 7월, JTBC 캠핑클럽을 통해 14년 만에 완전체로 예능 활동을 했다. 참고로 단체 예능은 2005년 1월 10일 야심만만 이후 최초다.
데뷔 전
대성기획에서 젝스키스 다음으로 야심차게 기획한 아이돌. 본래에는 같은 회사 출신의 중고신인 김준희를 기반으로 그녀가 리더를 맡아 한국의 TLC로 결성하기로 되어있었고 그에 맞춰 훗날 '타샤니'로 데뷔하게 되는 '애니' 등 힙합 삘이 제대로 나는 연습생들이 있었지만, 이후 이호연이 그룹 컨셉을 힙합에서 귀여운 댄스 그룹으로 가기를 원해서 원년 멤버들이 모조리 탈퇴하게 되었다고 한다.
1997년 하반기쯤 합류한 옥주현은 이미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별밤뽐내기 연장원 출신이었다. 라디오에서 옥주현이 부른 머라이어 캐리의 'Hero'를 들은 대성기획 사장 이호연이 직접 옥주현과 컨택해서 핑클 첫 멤버로 합류시켰다. 옥주현은 성악을 전공하여 대중가수에는 생각이 없었으나 이호연 사장의 설득을 통해 연예계에 발을 딛게 된다. 옥주현이 힐링캠프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이호연은 옥주현을 처음 보고 왜 이렇게 뚱뚱하냐고 돌직구를 던졌으나, 옥주현은 나는 성악하는 사람이니 상관없다고 맞받아쳤다고 한다. 그러자 이호연은 너 아이돌 시켜준다는데 뭐가 싫냐며, 여자는 살빼고 쌍꺼풀 수술 하면 확 바뀐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또한, 젝스키스 콘서트를 공짜로 보여주며 꼬셨다. 그런데 데뷔 날짜가 다가오는데도 수술을 안 시켜주다가 뒤늦게 시켜줘서, 데뷔하고 쌍꺼풀이 부은 채로 활동했다.
그 이후로 옥주현은 핑클 결성에 많은 부분에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데, 이진 역시 옥주현이 캐스팅해 온 멤버다. 이진은 은광여자고등학교 2학년 재학시절 강남 일대에서 유명한 얼짱 물론 당시에는 얼짱이란 단어가 없었다. 당시 사용되던 단어는 킹카&퀸카 이었는데, 옥주현의 친구가 이진과 아는 사이였다. 그래서 옥주현은 직접 은광여고로 찾아가서 단역 연기자 출신인 이진에게 오디션을 볼 것을 요청했고 너! 내 동료가 돼라 에코의 '행복한 나를'을 부른 이진은 핑클의 두 번째 멤버가 되었다.
성유리는 1997년 5월 교내 사생대회에 나갔다가 김동완, 유진, 이효리, 김상혁 등등을 캐스팅한 바 있는 캐스팅디렉터에 의해 발굴되었다. 당시 캐스팅 디렉터는 눈에 띄는 미인이었던 성유리에게 명함을 주면서 젝스키스가 있는 곳이라고 했으나, 성유리는 그 당시 서울대 의예과와 성균관대 의대를 동시에 합격한 친오빠의 영향으로 의사가 꿈이었고 나름 모범생이었기 때문에 가수가 될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 9월에 부모님 몰래 대성기획에 오디션을 보러간다. 당시 옥주현이 성유리의 오디션을 보았고, 이호연은 옥주현의 말을 듣고 핑클 멤버로 합류시켰다. 이때 성유리의 말로는 처음엔 옥주현의 성숙한(...) 외모 때문에 멤버가 아니라 음악 선생님인 줄 알았다고
남은 한 자리엔 '애니'부터 시작해서 영턱스클럽의 멤버 전현정 및 후에 클레오로 데뷔하는 멤버 채은정 등 많은 가수 연습생들이 거쳐갔지만 모두 핑클과는 인연이 되지 못했으며, 옥주현, 이진, 성유리 3명은 확실하게 모였지만 소속사 사장의 고집으로 꼭 4인조로 데뷔해야 했고 세 명이 캐스팅 된 이후 긴 시간 동안 네 번째 멤버를 발탁하기 위해서 공을 들였다. 이 모 기획사에서 힙합그룹을 준비하는 중이던 이효리가 마지막으로 그룹의 멤버로 확정되었다.
이효리는 당시에도 주변 지역에 소문난 유명인이었고, 압구정동 레스토랑에서 알바하던 중 캐스팅 디렉터에 의해 발굴되었다. 힐링캠프에서 이효리가 밝힌 바에 따르면, 어느날 대뜸 '나 이호연이요'라고 전화가 와서 사장을 만났다고 한다. 만나서는 노래나 춤 하나도 안 시켜보고 얼굴만 보고 바로 뽑았다고 한다. 참고로 이효리는 과거 H.O.T. 팬이어서 SM 회사 앞에서 토니안을 기다리다가 SM에 캐스팅되어 연습생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이효리가 과거 몸담고 있던 회사에서 이효리를 상대로 부적절한 계약을 하고 있던 점을 파악한 DSP 측이 이효리의 가능성을 높게 판단하여, 쿨하게 위약금을 던져주고 이효리를 데려오면서 핑클의 마지막 멤버가 되었다. 최근 한 방송에서 룰라의 이상민, 샵의 이지혜가 같은 소속사(당시 월드뮤직)에서 연습생으로 있던 것을 기억한다며 말하기도 했다.
이후 PC통신에서 그룹명 공모를 받아 "핑클"로 정했으나 이걸로는 부족했던지 상단과 같은 거창한 짬뽕 단어의 약자를 핑클로 부르자고 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그룹명 공모 같은 건 안 하는 게 좋다
그렇게 이 4명의 소녀는 핑클로서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기록
- 걸그룹 최초로 가요대상을 2회 수상하였다.
- 걸그룹 최초로 단독 콘서트를 개최하였다.
- 아이돌 걸그룹 최초로 가요대상을 수상하였다.
- 1999년 12월 평양에서 개최된 SBS 평화친선 음악회에 참여함으로써 걸그룹 최초로 평양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
- 1999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30세 미만의 국민이 뽑은 10대 가수상'과 '30세 이상의 국민이 뽑은 10대 가수상' 두 부문에 모두 올랐다.
- 2000년 4월 MBC 드라마 <이브의 모든것> OST의 메인 테마인 'True Love'를 불렀다. 이로써 핑클은 아이돌 최초로 드라마 OST에 참여하게 되었다.
- 2000년 9월 남미 가이아나 공화국에서 핑클 우표가 발행되었다. 이러한 스타 우표는 93년 엘비스 프레슬리 우표를 시작으로 마릴린 먼로, 제임스 딘, 마이클 잭슨, 마돈나 등의 우표가 발행되었으나 국내 연예인을 대상으로 우표가 발행된 것은 핑클이 처음이다. 이 우표는 미국과 동남아 지역에서도 판매되었다.
- 2001년에 KBS 2TV 슈퍼 TV 일요일은 즐거워의 코너인 99초 스탠바이 큐에서 걸그룹 최초로 예능 메인MC를 맡았으며 큰 인기를 끌었다.
- 2001년 '당신은 모르실거야'가 지상파 3사 음악프로그램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였다. 5월 13일 SBS '인기가요'를 시작으로 19일 MBC '쇼! 음악중심'의 전신인 '음악캠프'를 거쳐 31일 KBS 2TV '뮤직뱅크'에서 1위에 올랐는데, 이는 2013년에 인피니트가 '맨 인 러브'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기 전까지 마지막 그랜드슬램 기록이었다. 두 기록의 시기 차이는 무려 12년이다.
- 2004년 SBS 스타의 전당에 선정되어 SBS 목동 신사옥에 조성된 스타의 거리(Star Street)에 핑클 멤버들의 핸드프린팅이 있다. #
- 2005년 1월 10일에 멤버 전원이 SBS 야심만만에 출연하여 평균 시청률 24%를 기록하였다.
- 2005년에 Forever Fin.K.L DVD가 발매되었는데 이는 걸그룹 최초로 제작된 DVD이다.
- 2017년 7월 빌보드지가 선정한 위대한 역대 걸그룹송 100(100 Greatest Girl Group Songs of All Time)에 3집 수록곡 나우(Now)가 88위로 랭크되었다. # #
여담
- 1세대 아이돌 4대천왕 중 유일하게 범죄자가 없는 그룹이다. 그만큼 멤버 모두가 철저히 자기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
- 평균 신장이 상당히 높은 걸그룹이다. 이효리가 164cm로 팀내 최단신이고 나머지 2명은 최소 168~169cm 이상에 최장신 옥주현은 173cm에 달한다. 이는 2020년 현재 활동중인 모든 걸그룹을 다 해도 최상위권에 드는 키이며, 무려 20년 전에 결성된 그룹이라는 걸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장신군단이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해 활동기간도 일부 겹치던 S.E.S.를 보면서 너무 이쁘고 요정같아서 주눅이 들었다가 '괜찮아 우린 떡대가 있잖아!' 하면서 으쌰으쌰했다는 얘기를 본인들 스스로 하기도...그런데 그냥 봐도 커 보이는 옥주현에 나머지 멤버들이 묻히는 감이 있는데 이들은 얼굴이 작고 귀여운 상이라 화면상으로는 커보이지 않는다.
- 네 멤버 모두 오빠가 한 명씩 있다. 옥주현을 제외한 세 멤버는 모두 막내인 것도 특징. 옥주현은 남동생도 한 명 있는 3남매 중 둘째이며 캠핑클럽에서 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 이름과 나이가 공개되었다.
- 의료계에 종사한 가족들이 유독 많다. 이효리 둘째 언니는 전직 성형외과 간호사, 이진 언니 역시 간호사였고, 성유리 엄마도 독일에서 간호사로 근무하였으며 친오빠는 성균관대학교 의대 1기 졸업생으로 현재 삼성병원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다.
- 이효리의 프로필상 생일은 5월 10일이지만 실제 생일은 3월에 있다고 한다. 3월 며칠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로써 핑클은 멤버 전원의 생일이 3월에 있다.
- 2000년 KT와 협약을 맺어 핑클의 멤버들이 당시에는 대중적이던 공중전화 카드의 모델으로도 발행이 되었다. 15종의 공중전화 카드가 발행되었다. 2000원 권 1종, 3000원 권 10종, 5000원 권 1종, 10000원 권 3종이 발행이 되었다. 2000원 권 50000장, 10000원 권 각 100000장, 3000원 권 150만 장, 5000원 권 50000장. 16년의 세월이 흐른 2016년에는 생각보다도 구하기 힘든 물건이 되었다.
- 2001년에 발매된 토니 호크의 프로 스케이터의 국내에 정식 발매된 PC 패키지에서는 핑클 네 명의 모습을 딴 캐릭터로 플레이할 수 있다. 멤버별로 기존 능력치와 스킬이 다르게 설정되어 있고 핑클의 히트곡도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게임 캐릭터의 모습이 실제 멤버들과 그다지 닮지 않았다.#
- 포맨의 5집 수록곡 'Star'는 성유리의 팬이었던 작사가가 성유리를 생각하며 쓴 노래라고 한다.
- 핑클도 아는 국군의 주적이라는
불쏘시개국방홍보만화가 한때 그 괴이함으로 방송을 타 유명해지기도 했다. 정작 핑클 멤버들은 자기들 이름이 이런 만화에 쓰이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 "핑클 효과"라는 말도 돌았는데, 핑클이 예능에 나오면 그 프로그램 시청률이 꽤 상승한다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SBS에서는 심지어 핑클 이름으로 예능을 뽑은 적도 있었는데, 그게 <핑클과 가자가자>였다. 이 프로그램은 평균 시청률이 20%가 나오기도 했다. 또한 단체활동을 종료한지 한참 뒤에 완전체로 출연한 2005년 1월 10일자 <야심만만> 시청률은 평균 24%를 기록하기도 했다.
사실 이건 핑클 멤버 전원이 예능감이 상당히 좋은데다 서로 케미나 팀워크가 끈끈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일단 센터이자 리더이며 제일 인지도가 높은 이효리부터가 명실상부 예능인 취급 받을 정도로 예능감이 훌륭했고, 이진의 경우 나서서 뭘 하진 않지만 어딘가 허당스러운 모습으로 멤버들에게 장난어린 디스를 받거나 뻣뻣댄스, 할렐루야,아다지오등등의 예상치 못한 활약으로 레전드 웃음을 주는 일종의 몰이캐릭터였다. 성유리는 데뷔 초에 카메라를 쳐다보지도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 언니들을 과감히 디스하며 의외의 예능감을 선보이기도 했다.그렇게 탄생한 본인도 싫어하는 흑역사 훌라후프옥주현의 경우엔 혼자 나오면 말을 잘 하지만 4명이 동시에 나오면 상대적으로 덜 웃긴 편이었는데 특유의 화통하고 넉살 좋은 성격으로 멤버들의 기행이나 드립을 잘 받아주거나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큰 웃음을 주는 서포트 역할을 주로 수행했다. 아무튼 이들의 예능감이 핑클의 대중적 인기를 더 공고히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 역시나 이런 여자 아이돌은 예나 지금이나 남자 아이돌의 빠순이에게 공공의 적이었지만, 핑클은 다른 그룹들과 달리 자기들한테 달걀을 투척했던 핑클 안티 팬을 한 명 낚아채서 밴으로 압송, 반강제로 협박(…)을 하여 반성문을 쓰게 하는 등 안티들에 대한 대응 능력이 대단했다.
- 같은 소속사인 젝스키스의 팬클럽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2000년 젝스키스가 해체되자, 젝스키스의 팬클럽이 젝스키스의 해체는 핑클 탓이라면서 싸잡아 공격했던 적도 있다. 젝스키스가 해체하기 이전에도 젝스키스 팬클럽 회원들의 대부분은 "이호연은 오빠들이 번 돈을 저 X들에게만 쓴다."고 주장(혹은 생각)하며 핑클을 싫어했다. 당시 PC 통신에서는 일부 회원이 젝스키스와 핑클이 함께 출연한 지상파 방송에서 핑클 팬클럽의 응원을 방해하려고 계획을 짜던 일이 발각된 적도 있었다. 심지어 핑클을 구타하겠다고 핑클 집에 찾아간 X들도 많았고, 싸인회에 침범해서 이효리와 이진에게 달걀이나 돌멩이를 던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공개 방송이 끝나고 오프라인으로 욕설을 투척하는 일도 많았다. 당시 올라온 글들을 보면 좀 심하다 싶은 것들도 보인다. 오늘날 보면 손 발 오그라드는 수준의 주작 글을 올리며 핑클과 클릭비를 천하의 개쌍놈으로 만들거나#, # 이효리가 이호연 애를 낙태해서 핑클한테 대상줬다는 식의, 오늘날 같으면 바로 고소미 먹을 비방 글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젝스키스의 해체에 관한 자세한 것은 젝스키스 항목 참조 바람. 잘못을 따진다면 DSP에 따져야지 핑클의 잘못으로 탓할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핑클도 계약서 없이 거의 무계약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에서 활동했으니 핑클이라고 대우가 마냥 좋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이건 핑클의 잘못은 일절 없다.
- 핑클 매니저였던 길종화가 멤버 네 명의 호르몬 주기를 다 알고 그에 따라 과격한 야외촬영을 조정해줄 정도로 세심한 언니, 엄마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그래서 핑클 멤버들은 길종화 매니저를 종화 오빠가 아닌 종자 언니라고 불렀고# 길종화 매니저는 이렇게 부르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 포트리스2가 국민 게임이던 시절 핑클맵이 나온 적이 있다. 근데 특이하다면 특이한 게 이미 핑클 팬덤까지 거의 와해된 상황에서 그 맵이 나왔다는 것.
대체 무슨 의도야?이후 비인기 맵을 정리하는 업데이트에서 삭제되었다. 양옆에 3층이 없어 최대 높이가 낮고, 대신 아랫층의 두께가 조금 더 두껍다는 점만 빼면 당시 국민 맵인 스핑크스와 별 다른 점이 없어서 금새 묻혀버렸는데, 삭제된 원인이 여기에 있을 듯. 때문에 랜덤 방이 아니면 정말 보기 힘든 맵이었다. 전체적인 컬러는 분홍색이었다.
- 2015년 1월 12일 방송된 <힐링캠프>에서 핑클 멤버 전원이 동시에는 아니지만 서로 전화로나마 대화를 했다. 여전히 서로 돈독함을 과시하며 불화설을 일축했다. 대화로 미루어보건데 각자 배우로서, 가수로서 각자의 위치에서 잘 나가는 입장으로서 서로 바쁘다보니 연락이 소홀해지고 불화설이 떠오르니 그에 더 부담스러워져 연락이 더 줄어들어 버렸던 듯하다.
- 핑클의 불화설은 제3자들에 의해 생성되고 부풀려진 면이 있다. 그리고 동시대에 활동했던 다른 아이돌 그룹들과 달리 완전체로 방송에 출연한적이 없었던 것도 이들의 관계를 의심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사실 제기된 불화의 원인들도 객관적으로 보면 말이 안된다.
- 이효리와 이진의 싸움. 이 싸움은 1998년 때의 일이다. 그때 싸운게 진작에 난것도 아니고 10년이 넘어서 불화설의 원인이 되는게 말이 되는가. 이효리 본인도 싸운 후 잘 지냈다고 말했었다.
2. 술 문제. 이효리만 술을 좋아해서 달랐다고 하는데 예능에서 이효리가 말한 시점은 1998년이다. 이때는 다른 셋은 모두 미성년자였다. 이후 옥주현은 이효리랑 같이 술마시고 놀러 다녔다고 했고 성유리는 그정도는 아니지만 같이 술을 오래 마셨다는 일화가 있다. 동생들이 고민상담을 하면 불술을 먹여주고 부침개를 직접 치워주기까지 했다
3. 결혼식 문제. 불화설이 커진 계기인데 이효리의 결혼식때 핑클 멤버들이 참석 안했던 것. 하지만 이 당시 이효리랑 친한 지인들도 대부분 불참이었다. 그리고 이후 이진의 결혼식때 옥주현 외에는 모두 불참했고 성유리는 아예 알리지 않고 결혼했다.
4. 토토가 불참. 불화설의 최고조. 물론 이유는 있었다. 옥주현은 뮤지컬 공연 중이었는데 무한도전 촬영날과 겹쳤다. 성유리는 영화 촬영 중이었기 때문에 본인한테 온 섭외 전화에서 거절했다고 밝혔다.
5. 이효리가 막판에 들어와서 다른 멤버들이 싫어했다는 설. 결성과정을 보면 알겠지만 컨셉을 바꾼 후 항상 4인조로 데뷔를 해야해서 다들 이효리를 기다렸던 상황이었다. <캠핑클럽>에서 밝히길 말도 너무 빨리 놨다고 한다.
사실 흩어진 후 이들의 행보를 보면 문제가 없다는건 알 수 있다. 2011년까지 매년 한번씩은 만남을 이어왔고 같이 모인 사진도 종종 공개 됐다.
따지고 보면 이효리가 떡밥을 던져줘서 생긴 일이긴 하다. 본인 생각으론 그땐 그랬지 의도였겠지만. 핑클팬이면 이효리와 이진이 초반에 싸운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머리끄덩이 사건에 대해 크게 생각 안했지만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겐 오해의 소지가 있었고 하필이면 의심될만한 상황들이 연이어 일어났으니.
- 핑클이 파리바게트 광고를 위해 파리바게트에서 만든 CD게임에 등장한 적이 있다. 옛날 물건이라지만 퀄리티가 너무 처참하다(...).
- 핑클을 모델로 한 게임 ‘패스트푸드(게임)' 도 있었다. 가게 이름을 정할 때 'FInKL'로 하면 핑클을 직원으로 채용할 수 있다.
- 2010년에 개최된 제 1회 서울문화예술대상에서 이효리는 대중음악가수 부문 대상을 옥주현은 뮤지컬배우 부문 대상을 수상하여 한 아이돌 그룹에서 동시에 두명의 대상 수상자가 있는 전무후무한 일이 발생하였다.#
- 2014년 <무한도전 -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특집에서 이효리, 옥주현 등을 찾아가는 장면이 나왔다. 메인 보컬 옥주현이 95점을 받아 일단 핑클의 출연이 확정되었으나...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
- 이호연 사장과 나름 좋은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이호연 사장이 뇌출혈로 쓰러지고 병실에 누워 있을 때, 핑클 4명이 모두 찾아와서 이호연 사장이 좋아하던 노래 "루비"를 불러주며 눈물 지었다고 한다.# 2013년 5월 29일 라디오스타에 이효리가 출연해서 말하길, 사장님과 매우 친분이 두터워서 회사가 어려워 월급이 밀리면 다음에 상황 좋아지면 달라고 쿨하게 넘어갔다고 한다. 이외에도 솔로 1집이 대박난 이후로는 이효리가 예전과 달리 싫은 건 싫다고 하자, 이호연 사장이 이효리한테 '아. 네! 이 사장님'거렸다는 말도 있다. 성유리는 <무릎팍도사>에서 데뷔 때 신인으로서는 받기 어려운 좋은 대우를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고, 회사에서 나갈 때도 매우 원만히 나가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옥주현은 2015년 핑클 회동 당시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리며 핑클의 성공에 이호연 사장 역할이 컸음을 밝히기도 했다.
"오랜만에 옛날 이야기 보따릴 펼쳤더니 재미난 일들이 많긴 하다. 넷은 여러모로 세고 특이했다. 이상하리만큼 운이 좋았다, 우린. 가수가 되고 싶단 큰 꿈도 없이 캐스팅된 아이들. 노래 안 되고 춤도 안 되는데 '연습생 시절'이란 것도 없이 그 상태로 데뷔를 시킨다고… 망할 거라고 확신하며 아무 기대도 겁도 없이 세상에 나왔다. 예상대로 데뷔 곡 '블루레인'은 큰 집중을 받지 못했지만 좌절하지도 않았다. 당연하다고 생각했기에. 우리 사장님은 갑자기 말도 안 되는 곡으로 방향을 바꿔 빛의 속도로 일을 진행했다. 뮤직 비디오를 찍던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이런 옷을 입고, 이런 유치한 가사를 립싱크하라니. 이걸로 앞으로 방송도 해야 하냐고. -이것봐 나를 한번 쳐다봐. 나 지금 예쁘다고 말해봐-콜미 콜미 콜콜 기 붜 코올 -난 니 거야- 우린 모두 하기 싫은 티를 뚝뚝 묻혀가며 했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터질 줄이야…! 그 이후 고공행진. 노래 춤 실력을 키워야 하는데 예능의 절대 강자로 시청률을 제압하던 핑클은 잠자는 시간, 가요 프로그램 출연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예능 촬영에 몰두. 노래 연습은 안녕… 춤은 모두가 따라 출 수 있는 걸로. 오늘 밥 먹으면서 저 위의 내용으로 웃음꽃이 활짝 폈다. 신기하지 않냐며, 잠깐 꿈을 꾸고 깨어난 것 같다며. 갖춰진 것도 없이 운이 억수로 좋았던 건 말이 안 되는 걸 되게끔 옆에서 애써준 사람들의 공이 크다고…FBI에서 훈련 받는 것보다 우리 넷을 케어하는 게 몇 배는 더 고통스러웠을(^__^) 매니저 오빠들. 불도저 이호연 사장님. 오늘 귀 좀 간지러우시겠다. 핑클을 에워싼 숲이 되어준 그대들에게 고맙고 보고 싶고 미안하고… 넷이서 이야기 나누며 많이 그리워했어요. 오겡키데스카."
- 이효리, 옥주합(?), 최진(?), 옥유리(?)로 이루어진 4인조 걸그룹이라고 한다.
옥씨가 두 명이나 있는 그룹
- 영화감독 이병헌이 핑클 헌정 영화를 제작하고 싶다고 밝혔다.#
- 핑클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효리가 잡고 이끄는 그룹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효리는 핑클 내 서열 꼴찌다. 서열 1위는 막내인 성유리. 당시 표현만 없었을 뿐 걸그룹 막내온탑의 시작은 이분이다. 기 쎈 걸로는 어디 가서 안 밀리는 이효리, 옥주현과 이들만큼은 아니지만 만만한 성격은 아닌 이진 이 세 사람이 다 성유리 앞에서는 동생 바보다. 캠핑클럽을 보면 언니들이 다 성유리를 이뻐하는 걸 알 수 있다.
아직도 18살로 생각하는거 같긴 하지만. - <캠핑클럽>에서 활동 중단의 이유가 짧게 나왔는데 당시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과 달리 핑클이 활동할 당시에 아이돌들은 활동을 오래 하지 않았고 dsp에서의 마지막 활동 시기 핑클 멤버들의 나이를 보면 이효리 27살, 옥주현과 이진 26살, 성유리가 25살로 모든 멤버가 곧 20대 후반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 활동하기엔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4회 출연하여 당대의 아이돌들 중 최다 출연했다. 이소라의 프로포즈는 오직 라이브만 취급했고 비가수들도 출연했지만 가수에 한해서는 이소라가 엄격했기 때문에 출연하기 어려운 방송이었다.
- 1세대 아이돌들 중 제일 늦게 다시 뭉쳤기 때문에 제일 오래 걸렸다는 인식이 있는데 각각 기간을 계산해보면
god -> 11년/9년, 젝스키스 -> 16년,
S.E.S ->14년, H.O.T.-> 17년, 핑클 -> 14년
보면 알 수 있듯이 다른 그룹들에 비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하지만 기다린 팬들한테는...
- 핑클 그룹명의 사용에 제약이 없다. 사실 원소속사에서 이적한 경우 그룹명 사용은 어려운 문제다. 핑클의 경우 2004년 dsp에서 상표권을 등록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이후 아무도 등록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핑클은 고유명사의 취급을 받게 되었고 이젠 아무도 핑클의 상표권을 등록할 수 없다고 한다. 즉 핑클은 이효리, 옥주현, 이진, 성유리의 그룹으로 고유명사가 된 것이다.
- 사실 이효리는 다른 세명이 찍힌 사진을 보고 합류를 주저했다고 한다.
솔직히 그 사진 진짜 못 찍었다.그래도 결국 합류하기로 하고 첫만남을 가졌을때 옥주현, 이진, 성유리는 이효리의 외모와 몸매에 놀랐고 성유리는 속으로 '됐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근데 동시에 이효리는 성유리를 보고 안심했다고.
- 2002년 이후 활동을 중단했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음악방송 활동은 4집 2002년이 마지막이지만 핑클로서 활동은 2005년까지 했다. 2005년 1월 야심만만에 단체로 출연했고 10월에는 디지털 싱글 앨범 <Forever Fin.K.L>을 발매했다.
- 핑클의 노래를 후배 아이돌들이 리메이크 하거나 커버를 하는데 제일 많이 하는 곡 3개를 꼽으면 <내 남자친구에게>, <Now>, <화이트(White)>다.
<내 남자친구에게>는 전형적인 소녀스러움을 어필하는 곡이기 때문에 신인 걸그룹들이 많이 커버한다.
<Now>는 정말 많은 후배 걸그룹들이 커버하고 리메이크도 했는데 소녀시대, 원더걸스, 카라, 티아라, 포미닛 등 어지간한 2세대 걸그룹은 다 커버를 했고 게다가 3세대인 트와이스, 마마무도 커버를 했다.
<화이트(White)>는 겨울하면 떠오르는 명곡으로 후배 가수들이 겨울 시즌에 많이 커버를 한다.
근데 의외로 제일 성적이 좋았던 <영원한 사랑>은 거의 없다. 추측하자면 옥주현의 파트를 감당 못해서 인 듯.
- 후배 걸그룹 중에서 소녀시대 와 교류가 많다. 같이 방송 출연도 많이 했고 소녀시대 멤버들이 옥주현의 뮤지컬 공연에 찾아오고 같이 찍은 인증샷도 많다. 사적으로 보면 이효리와 유리, 윤아는 이효리가 제주도 본인의 집으로 부르는 사이다. 유리와 같이 고량주를 밤새 마시고 이후 생긴 잔해물을 이상순이 치웠다는 일화가 있다. 윤아와는 같이 <효리네 민박2>를 촬영했다. 옥주현은 소녀시대의 데뷔 초창기때 멘토 역할을 해주었다. <김승우의 승승장구> 소녀시대편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티파니와 서현이 옥주현과 많이 만나는 사이다.
- 성유리는 다양한 헤어스타일에 심지어 머리에 꽃을 심기도 했다. 본인말로는 이뻐보이는 줄 알았다고. <가면의 시간> 무대 영상을 보면 산다라박을 연상시키는 헤어스타일을 한적이 있었고 산다라박의 원조가 성유리네라는 댓글이 있었다.
정규 앨범
집수 | 앨범명 | 활동곡 | 발매일 |
1 | Fine Killing Liberty : BLUE RAIN | Blue Rain / 내 남자 친구에게 / 루비(淚悲) : 슬픈 눈물 | 1998년 5월 20일 |
2 | White | 영원한 사랑 / 자존심 / Waiting For You | 1999년 5월 12일 |
2.5(비정규) | S.P.E.C.I.A.L | 나의 왕자님께(To My Prince) / 화이트(White) / 가면의 시간 | 1999년 11월 24일 |
3 | Now | Now / Feel Your Love | 2000년 10월 6일 |
3.5(리메이크) | Memories & Melodies | 당신은 모르실거야 / 늘 지금처럼 | 2001년 4월 13일 |
4 | call me in your heart ...can be my soul show you love again | 영원(永遠) / Don't Go Away | 2002년 3월 8일 |
싱글 앨범
구분 | 앨범명 | 곡명 | 발매일 |
디지털 싱글 | Forever Fin.K.L | FINKL | 2005년 10월 26일 |
싱글 앨범 | 남아있는 노래처럼 | 남아있는 노래처럼 | 2019년 9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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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이에스 SES 프롤로그
그룹명 | S.E.S 에스이에스 Sea.Eugene.Shoo |
멤버 | L 바다 ( 최성희 [崔成希] / 80 /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 / AB ) 유진 ( 김유진 [金楢眞] / 81 / 서울특별시 노원구 / A ) 슈 ( 유수영 [柳水永] / 81 / 일본 카나가와현 요코하마시 / A ) |
데뷔 | 1997년 11월 24일 정규 앨범 [I'm Your Girl] |
활동기간 | 1997년 11월 28일 ~ 2002년 12월 19일 2016년 11월 28일 ~ 2017년 1월 1일 |
소속사 | SM엔터테인먼트 |
공식색 | 펄 보라 |
팬덤 | 친구 (Friend) |
개요
1997년 11월 28일에 SM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데뷔한 대한민국의 3인조 걸그룹이다.
1세대 대표 걸그룹 중 하나인 S.E.S.는 이미지뿐만 아니라 음악까지 인정할 수 있는 아이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0년대에 이르러도 음악과 컨셉, 이미지 등 많은 부분에 있어 걸그룹 후손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으며, 대중성과 음악성을 동시에 잡은 그룹.
몇 세대의 아이돌을 거치는 동안 대한민국 가요계에 등장한 수많은 걸그룹의 시초에는 S.E.S.가 있었다.
S.E.S.는 미래에 등장한 걸그룹들이 나아가는 방향의 모델이 되었고, 멤버들의 성장과 더불어 음악도 함께 성숙해지는 모습으로 대중들의 기대를 충족시킨 S.E.S.는 대한민국 걸 그룹 시대의 화려한 시작을 알렸다.
S.E.S.는 데뷔부터 해체까지 큰 잡음이 없었고, 유진이 '친자매나 다름없다'고 할 만큼 해체 후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등 여러 면에서 이상적이고 긍정적인 걸그룹의 길을 걸었다.
팀 내에서 역할은 바다가 메인보컬, 유진이 비주얼, 슈는 일본담당으로 나뉘어 있었다.
데뷔초부터 각종 언론과 방송에서 멤버 각각의 매력에 맞는 여성상을 부여하여 소개했는데 바다는 귀여움, 유진은 청순함, 슈는 여성스러움을 담당하였다. 이후 2008년에 《불후의 명곡》에 출연해서 다시 한번 밝힌 내용이기도 하다.
영원한 가요계의 요정이란 소리를 듣고 있지만, 사실 대놓고 요정 컨셉으로 나간건 2집 뿐이다.
1집은 사랑스러운 여자친구 컨셉이였으며 3집부터는 요정보다는 세련된 도시 여자 이미지가 더 강했다.
하지만 워낙 2집 때의 요정 컨셉이 강렬한 임팩트를 가지고 있었고 또 본인들도 활동 당시 요정이미지에 대한 강박관념에 언제나 시달렸다고 하는데, 이때는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서 주로 주유소 화장실을 이용하였으며 심지어 유진같은 경우는 탄산음료나 커피조차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활동한 모든 타이틀곡들과 후속곡들이 커버된 걸그룹. 1집에서 5집까지 활동한 모든 타이틀곡들과 후속곡들 모두 TV 무대, 라디오, 각종 오프라인 행사 등에서 노래와 댄스가 커버되었다.
심지어 3집의 팬서비스로 메들리로 활동한 샤랄라와 활동하지 않은 5집 수록곡 달리기도 커버되었다.
대한민국 역대 걸그룹들중에 활동한 모든 타이틀곡들과 후속곡들이 다른 걸그룹들이 커버해서 음악적으로 사랑받은 걸그룹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결성 과정
1996년 이전에도 우리나라 가요에선 여자 가수들이 미약하게나마 있었는데 1993년에는 S.E.S.같은 춤추고 노래하는 아이돌 형태의 최초의 걸그룹이라 할수있는 애플이라는 3인조 걸그룹이 나왔다.
바로 몇주 후 CF 모델 출신들로 결성한 S.O.S라는 4인조 그룹이 나왔고 같은해에는 처음으로 언론에 걸그룹으로 소개된 중앙대학교 연극영학과 4학년생들이 만든 칼라라는 그룹으로 1993년 강변가요제에서 "후회하고 있는거야" 라는 데뷔곡으로 대상을 받았다.
칼라는 당시 걸그룹이라 불렀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빅마마같은 보컬 그룹이라 할수 있기 때문에 춤추고 노래하는 아이돌 형태의 최초 걸그룹은 애플이 시조새라 할수있다. 대중가요계 걸그룹 선풍여성그룹 가요계 새바람
1994년에는 윤현숙과 이혜영의 2인조 그룹 코코, 1995년에는 3인조 그룹 쎄쎄쎄, 1996년에는 비비와 뚜띠라는 2인조 그룹이 등장하여 인기를 끌었지만 오늘날의 걸그룹 컨셉과는 차이가 있었다. 사실, 위의 사례는 걸그룹이나 아이돌 컨셉보다는 듀오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여전히 여자 가수가 히트곡을 내는 건 1년에 두세번 있을까말까한 일이었고,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부터 20위까지 남자 가수들이 싹쓸이했을 정도로 여성 가수라 입지를 굳히기에는 너무나 척박한 환경이었다. 박미경, 강수지, 신효범, 엄정화, 이소라 정도가 명맥을 유지하며 순위에 이름을 올리는 정도였다. 위에서 언급한 1993년 언론에 걸그룹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여성 그룹의 존재 자체는 거의 없었고나왔다고 해도 우정의 무대에 몇 번 출연해서 인기를 잠깐 누리다 사려져갔을 뿐이었다.
당시 여성 그룹, 특히 여성 아이돌 그룹 쪽의 시장은 우리나라 음반 기획자들이나 레코드사들에겐 미지의 땅과도 같았다. 영국의 스파이스 걸스, 일본의 SPEED, 미국의 TLC와 같은 걸그룹들이 수백 수천만장을 팔아치우며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며 많은 제작사들이 의욕적으로 여성 그룹을 기획하고 도전했지만, 결과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레이블 반도음반에서 내놓았던 걸그룹 애플(아이돌), 일본식 아이돌을 표방하며 해외 진출까지 시도했던 4인조 S.O.S, 한국의 TLC를 꿈꿨던 에코, 삼성뮤직의 후원아래 홍콩에서 데뷔했던 이뉴, 1998년 2집 야야야 부터 즉 데뷔 1년 후 부터 인기를 얻은 베이비복스 1기까지 많은 그룹들이 데뷔했지만 성과가 만족스러운 걸그룹은 한 팀도 없었다. 남성 팬들의 호주머니를 열게 하기엔, 여성 그룹 시장의 진입 장벽은 너무나 높았다.
당시 현진영과 유영진을 발굴하고 H.O.T.를 데뷔시키며 선견지명을 과시했던 SM의 이수만은 여성 아이돌 그룹 시장의 잠재성을 인식하고 1996년 가을 무렵부터 걸그룹 프로젝트를 기획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앞선 수많은 여성 그룹들의 선례를 보면서, 여학생 팬들이 확보되어있는 남자 그룹들과는 달리 맨몸으로 부딪쳐야 하는 여성 그룹은 조금이라도 어설프게 보여서는 씨도 안 먹힐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여성 댄스 그룹을 기획하면서 2년동안 자그마치 1만명이 어떤 잡지에선 무려 3만명 넘는 소녀들을 오디션했다는 사실이 SM의 신중했던 준비과정을 말해준다. 오랜 오디션 끝에,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3명의 소녀들이 선발되었다. 안양예술고등학교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한 최성희, 괌 교포 출신의 김유진, 일본 가나가와현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유수영. 가창력은 다소 부족했지만 외모, 춤실력은 좋았던 유진, 슈와 가창력 멤버였던 바다까지 또한 외국어 구사 능력까지 고려된 결과였다.
당시 S.E.S. 후보였던 연습생은 총 8명으로, 바다가 먼저 리드 보컬로 정해지고 난 뒤, 유진과 슈가 서브보컬로 정해졌다.
바다는 안양예고 재학 시절 교내 축제 무대에 선 것을 계기로 이수만에 의해 발탁되었다. 원래 바다는 뮤지컬 배우를 꿈꿨으나 아버지의 병환으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대학 진학이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데, 이수만이 대학 학비 전액을 지원해 주면서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가수 준비를 하게 됐다. 유진은 H.O.T.의 화보집 촬영차 괌에 갔던 캐스팅 디렉터와 이수만의 눈에 띄어 발탁이 되었고 슈는 god의 손호영, 데니 안, NRG의 김환성과 함께 혼성 그룹을 준비하던 중 롯데월드 지하상가에 놀러갔다가 S.E.S. 제의를 받게되면서 둘을 남겨두고 먼저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다. 세 사람에겐 각각 바다, 유진, 슈라는 이름이 주어졌고, 각자의 이름자를 따서 S.E.S.라는 팀명이 결정되었다..
오랜 준비와 투자, 트레이닝 기간을 가졌던만큼 S.E.S.에게 좀 더 야심적인 음악이나 화려한 이미지를 씌워 줄 법도 했지만 SM은 오버하지 않았다. 오히려 S.E.S.를 통해 보여진 것들은 무척 심플하고 소박한 것이었다. 이것저것 다 하려 했던 다른 여성 그룹들과는 달리, SM은 히트곡을 만들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공식에 충실했다. 곡이 좋을 것. 노래를 잘할 것. 가수가 매력적일 것. 그리고 다른 요란한 이미지들 대신 그 바탕 위에서 극도의 세련미를 추구했다. 가수의 외모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깔끔하고 청순한 이미지로 단장되었고, 꽉 짜여진 안무와 감각적인 뮤직비디오가 보태졌다.
해체
2002년 12월 19일, SM 엔터테인먼트에서 유진이 SM을 떠나 독자적인 활동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함으로서 S.E.S.의 해체가 공식화되었다. 당시 SM은 유진과 바다가 SM과의 재계약을 포기했기 때문에 S.E.S.로 더 이상 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것처럼 언플을 했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부분은 회사와 두 멤버간의 재계약 불발로 인해 팀이 깨지는 것이 아니라 멤버 셋 모두가 S.E.S.라는 팀을 마무리하고 개인적인 미래를 준비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후 인터뷰에서 바다는 '세 멤버의 동의로 이루어진 해체'라는 점을 강조하였고, 일본활동을 마감하고 국내 활동을 준비할 당시부터 SM 잔류 여부와 상관없이 각자의 길을 걷기로 이미 합의를 끝낸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해체 발표 당일 S.E.S.의 해체 여파로 SM의 주가가 6.25% 급락했는데, 이에 SM은 그동안 S.E.S.의 음반 판매가 부진했기 때문에 소속사에서 많은 투자를 해오지 않았고 올해 활동이 다소 부진했기 때문에 협상결렬이 전체 매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알다시피 S.E.S.의 음반 판매량은 SM 내에서도 상위를 다투는 수준이었고 2002년만 하더라도 가수 보아에 이어 SM 내에서 두 번째로 높은 음반 판매고를 올렸기 때문에 저런 언플이 먹힐 리가 없었다.
바다는 MP엔터테인먼트와 20억 계약설이 있었으나 양측의 입장차이로 계약이 무산되면서 웅진코웨이개발 산하 웅진 미디어와 5억원에 전속계약을 체결하고, 유진은 S.E.S. 데뷔 당시 SM 엔터테인먼트에서 매니지먼트를 맡았던 정해익과 4억원에 계약, 슈는 그대로 SM 엔터테인먼트와 재계약을 맺게 된다.
여담
- 대한민국 걸그룹 최초로 해외 가요차트 1위를 석권하였다.
- 한국 대중 가수 최초로 마이클 잭슨과 같은 무대에서 공연하였다.
- 여가수 최초로 누나 부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 대한민국 최초로 인터넷으로 콘서트 티켓을 예매하였다.
- 가요 프로그램에서는 1위를 많이 수상하고 여러 상을 휩쓴 S.E.S.는 아이돌 1세대 6대천왕(혹은 4대 천왕) 중에서는 유일하게 연말 가요 대상과는 인연이 없는데, 주로 연말에 컴백해서 해를 넘겨 활동하다보니 시상식에서 손해를 많이 보는 편이었다. 대표적인 게 신인상인데, 당시 음반 판매량이나 인기로 봤을 때 당연히 전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석권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2집을 발표한 지 얼마 안 됐다는 이유로 후보에서 제외가 되는 등 이래저래 피해가 많았다. 게다가 같은 기획사 내에 H.O.T.라는 절대 강자가 있었기 때문에 여자 가수상은 언감생심 꿈도 못꾸는 상황이었다. 당시 1999년 KMTV 《가요대전》에서 여자댄스가수상 수상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가요대전 당일 KM 측에서 일방적으로 수상을 취소하면서 갑작스럽게 스케줄이 취소돼 버리는 일도 있었다. 이는 연제협과 SM의 불화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 H.O.T.가 전 부문을 석권한 상황에서 무시무시한 H.O.T. 팬들의 심기를 건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나마 만만한 S.E.S.를 희생양 삼아 SM 독점 수상을 저지당한 꼴이었다.
- 방송의 날 50주년 기념으로 KBS 라디오 《홍진경의 가요광장》에서 104명의 가수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S.E.S.가 총 35표를 얻어 여그룹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뒤를 이어 핑클, 빅마마, 소녀시대, 펄시스터즈&서울시스터즈 순으로 2~5위를 차지했다.
- 2010년, 음악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겨레에서 실시한 최고의 아이돌 설문조사에서 4위에 선정됐다. 1위는 보아, 2위는 소녀시대, 3위는 빅뱅, 4위는 S.E.S., 5위는 동방신기가 차지했다. 1세대 아이돌로는 유일하게 순위권에 포함됐다.
- 2014년, 빌보드가 뽑은 역대 K-Pop 걸그룹 TOP 10 중 한 팀으로 선정됐다. 빌보드는 S.E.S.를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케이팝에 엄청난 충격을 준 그룹'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당시 남성 지배적이던 가요계에 태풍을 몰고 온 격'이었다며, '중독적인 비트에 따라 하기 쉬운 가사, 스쿨걸 이미지 등으로 쟁쟁한 히트 메이커들을 재치고 큰 인기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 한창 활동하던 당시 인기 프로그램이던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게릴라 콘서트에는 2번(2001년, 2002년, 둘 다 대구) 출연했는데 두번 다 성공했다. 특히 2001년 출연 때에는 당시 최고 시청률을 기록해서 지금도 S.E.S.하면 게릴라 콘서트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 영원한 가요계의 요정이란 소리를 듣고 있지만, 사실 대놓고 요정 컨셉으로 나간건 2집 뿐이다. 1집은 사랑스러운 여자친구 컨셉이였으며 3집부터는 요정보다는 세련된 도시 여자 이미지가 더 강했다. 하지만 워낙 2집 때의 요정 컨셉이 강렬한 임팩트를 가지고 있었고 또 본인들도 활동 당시 요정이미지에 대한 강박관념에 언제나 시달렸다고 하는데, 이때는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서 주로 주유소 화장실을 이용하였으며 심지어 유진같은 경우는 탄산음료나 커피조차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 1집 활동때는 치마 의상을 전혀 입지를 않아서 팬들조차 왜 치마를 입지 않느냐고 문의 할 정도였다고... 결국 2집 후속곡 <너를 사랑해>부터 치마를 입기 시작한다.
- 활동한 모든 타이틀곡들과 후속곡들이 커버된 걸그룹. 1집에서 5집까지 활동한 모든 타이틀곡들과 후속곡들 모두 TV 무대, 라디오, 각종 오프라인 행사 등에서 노래와 댄스가 커버되었다. 심지어 3집의 팬서비스로 메들리로 활동한 샤랄라와 활동하지 않은 5집 수록곡 달리기도 커버되었다. 대한민국 역대 걸그룹들중에 활동한 모든 타이틀곡들과 후속곡들이 다른 걸그룹들이 커버해서 음악적으로 사랑받은 걸그룹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이후 같은 소속사 후배 걸그룹인 레드벨벳이 <Be Natural>을 리메이크 했으며, SM Rookies의 여자 멤버들도 <I'm your girl>을 리메이크했다.
- 일부 악질 안티들에 의해 S.E.S.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했다는 내용의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으나, 이미 각종 기사와 팬들의 증거 자료를 통해 전면 부정된 사실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커녕 팬들조차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 발단은 1998년 11월에 방송된 SBS 기쁜 우리 토요일에서 S.E.S.가 절 같은 곳에서 사진 촬영하는 것을 두고 신사 참배한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게 된 건데, 촬영 장소가 야스쿠니 신사가 아닌 도쿄의 하마리궁이란 게 밝혀지면서 순식간에 쉰떡밥이 되고 말았다. 팬들에 의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S.E.S.가 촬영한 신사에는 계단이 있지만 야스쿠니 신사에는 계단이 없다는 점 , S.E.S.가 촬영한 신사의 약수물 구조와 야스쿠니 신사의 약수물 구조가 전혀 다르다는 점 등 방송 캡처와 실제 신사 내 사진을 일일히 대조한 결과 야스쿠니 신사와 전혀 무관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무엇보다 논란이 된 영상을 보면 S.E.S.가 나무끈에 흰 천을 매달면서 소원을 비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것이 어떻게 신사 참배를 했다는것인지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다. 안티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매국노니 뭐니 설쳐댄 탓에 괜한 욕을 20년째 먹고 있다.
- 멤버 전부 SM관계자의 컨택 오디션으로 데뷔하게 되었다.
- NCT127의 "Dreams come true"는 S.E.S.의 2집 타이틀곡 "Dreams come true"를 오마쥬한 것이다.2분50초 참고
- 멤버 전원이 딸이 하나 이상 있다.
정규 앨범
집수 | 앨범명 | 활동곡 | 발매일 |
1 | S.E.S | I'm Your Girl, Oh, My Love | 1997년 12월 24일 |
2 | Sea&Eugene&Shoo | Dreams Come True, 너를 사랑해 | 1998년 11월 23일 |
3 | Love | Love, Twilight Zone, 샤랄라 | 1999년 10월 29일 |
4 | A Letter From Green Land | 감싸 안으며, Be Natural, I will... | 2000년 12월 23일 |
4.5 | Surprise | 꿈을 모아서, Unh Happy Day | 2001년 07월 11일 |
5 | Choose my Life - U | U, Just a Feeling, 달리기 | 2002년 02월 14일 |
6 | Friend | Soul to Soul | 2002년 11월 21일 |
7 | Remember | Remember, Candy Lane | 2017년 01월 0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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