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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걸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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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 프롤로그

2020. 5. 8.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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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 로고
김성희 포함 4인조
카라 5인조
카라 4인조

 

그룹명 KARA
카라
前 멤버

김성희

( 金成熙 / 89 / 1기 )

 

니콜

( 정용주 [鄭龍珠] / 91 / 1~2기 )

 

강지영

( 姜知英 / 94 / 2기 )

멤버

박규리 (1~3기)

( 朴奎俐 / 88 / 서울특별시 송파구 / AB )

 

한승연 (1~3기)

( 韓昇延 / 88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 A )

 

故 구하라 (2~3기)

( 具하라 / 91~19 /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 B )

 

허영지 (3기)

( 許齡智 / 94 / 경기도 고양시 / A )

데뷔

2007년 3월 29일

정규 앨범 <The First Bloooooming>

활동기간

2007년 3월 29일 ~ 2016년 1월 15일

(공식적인 해체 X)

소속사 DSP미디어
공식색 펄 피치
팬덤 Kamilia (카밀리아)

 


 

대한민국의 걸그룹. 2007년 3월 29일에 정식 데뷔했다.

그룹의 이름 '카라(KARA)'는 '달콤한 멜로디'를 뜻하며, 어원은 그리스어(헬라어) '즐거움(χαρα-Chara)'이다.

데뷔 시기가 같은 2007년에는 원더걸스, 카라, 소녀시대 순으로 데뷔했고, 저 두 걸그룹과 함께 2세대 걸그룹을 대표한다. 때문에 팬들은 세 걸그룹을 '원카소'로 묶어부른다.

 

팬클럽은 카밀리아. Kara에 Familia(가족)을 더해 만든 이름이다. 온라인에서는 카덕이라고 호칭하기도 한다.
아이돌 문서에서 아이돌로서 정말 별의 별 사태를 다 겪은 드문 그룹이라고 정의할 정도이다.

고생을 많이 한 그룹답게 팬들도 굉장한 충성심을 자랑한다.

팬들의 충성심이 정말 높고 팬덤의 아이덴티티가 강하기에 카덕 항목으로 분리되었다.

'Pretty Girl' 에서의 고무장갑 응원으로 유명해졌다.

2016년 1월 15일 공식적으로 박규리, 한승연, 구하라의 전속계약 종료와 소속사 이적을 발표했다.

허영지는 DSP 소속 아티스트로 활동하게 될 예정이다.

DSP 측에서는 해체는 아니며, 추가 영입 계획은 없다는 입장에 덧붙여 "최근 가요계에 재결합 열풍이 불고 있고, 카라도 먼 훗날 다시 모여 활동하게 될 가능성이 있기에 공식자료에 '해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정작 카라 멤버들은 재결합하더라도 네놈새끼 휘하에서는 절대 안 해라는 입장이다.

반면 주류 언론에서는 공식 해체라고 보도하였다. 핑클의 예처럼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한 상태지만, 향후 DSP의 대응에 따라 상황은 급변할 수 있다.

1월 18일 구하라와 키이스트 간의 전속계약이 발표되었다.

1월 26일 한승연과 제이와이드컴퍼니 간의 전속계약이 발표되었다.

7월 20일 박규리과 모션미디어와 전속계약이 발표되었다.

2016년 2월 20일 이후 소속사 홈페이지 아티스트 란에서도 카라가 사라졌다.

멤버들이 이후에 여러 번 해체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허영지 영입 과정에서 팬덤이 분열되면서 사실상 카라가 다시 뭉칠 가능성은 사라졌다.

홀로 DSP에 남은 허영지는 2019년 초 계약이 만료되었다가 별도 공지 없이 재계약을 한 것으로 보이나 더 이상 카라라는 이름은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다 2019년 11월 24일, 구하라가 생을 마감하면서, 카라의 전성기였던 5인조 체제와 카라의 황혼기이자 허영지가 멤버로 합류한 시기였던 두번째 4인조 체제에서 완전체 재결합을 볼 가능성은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다.

 


 

정규 앨범
집수 앨범명 타이틀곡 발매일
1 The First Bloooooming Break It 2007년 3월 29일
2 Revolution

미스터

Wanna

2009년 7월 30일
3 STEP STEP 2011년 9월 6일
4 Full Bloom 숙녀가 못 돼 2013년 9월 2일

 

미니 앨범
집수 앨범명 타이틀곡 발매일
1 1st Mini Album Rock U 2008년 7월 25일
2 Pretty Girl Pretty Girl 2008년 12월 4일

2집

스페셜 에디션

2nd Mini Album Pretty Girl Special Edition Honey 2009년 2월 12일
3 Lupin Lupin 2010년 2월 17일
4 Jumping 점핑 (Jumping) 2010년 11월 17일
5 PANDORA Pandora 2012년 8월 22일
6 Day & Night 맘마미 2014년 8월 18일
7 IN LOVE CUPID 2015년 5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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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걸스 프롤로그

2020. 5. 8.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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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걸스 로고
(2007) Irony [현아 포함]
(2007) Tell Me
(2008) So Hot
(2008) Nobody
(2010) 2 Different Tears
(2011) Be My Baby
(2012) Like This [선미 제외, 혜림 포함]
(2015) I Feel You
(2016) Why So Lonely [선예, 소희 제외]

 

그룹명 WONDER GIRLS
원더걸스
前 멤버 현아
( 김현아 [金泫雅] / 92 / 데뷔 ~ 2007년 7월 30일 )


선예
( 민선예 [閔先藝] / 89 / 데뷔 ~ 2015년 7월 20일 )


소희
( 안소희 [安昭熙] / 92 / 데뷔 ~ 2015년 7월 20일 )
멤버 유빈
( 김유빈 [金宥斌] / 88 / 광주광역시 광산구 / O )
(2007년 9월 합류)


예은
( 박예은 [朴譽恩] / 89 /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 AB )


선미
( 이선미 [李善美] / 92 / 전라북도 익산시 / AB )
(2010년 1월 탈퇴 2015년 6월 복귀)



혜림
( 우혜림 [禹惠林] / 92 / 서울특별시 / O )
(2010년 2월 합류)
데뷔 2007년 2월 13일
싱글 앨범 [The Wonder Begins]
활동기간 2007년 2월 10일 ~ 2017년 2월 10일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
공식색 펄 버건디
팬덤 WonderFul (원더풀)

 


 

개요

원더걸스는 2007년 2월 10일에 JYP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데뷔한 대한민국 걸그룹이다.

데뷔 이후 2007년 9월에 발매된 정규 1집 《The Wonder Years》의 타이틀곡 <Tell Me>가 범국민적으로 크게 히트하면서 2세대 아이돌 산업 시작을 알렸고, 이후 국내외에서 <So Hot>, <Nobody>까지 3연타로 대히트하면서 국민 걸그룹이자 원조 K-POP 넘버원 걸그룹으로 군림했다.

 

상세

초기의 원더걸스는 선예를 중심으로 현아, 소희, 선미의 4인조로 준비되었다가 데뷔를 얼마 앞두고 비공개 오디션을 통해 마지막 멤버 예은이 합류하며 5인조로 시작했다.

다만, 이 멤버가 계속 유지되었던 것은 아니고 데뷔 해 2007년 7월, 현아가 습관성 장염으로 인한 건강상의 문제로 그룹을 탈퇴하여 유빈이 투입되었고, 이후 2010년 1월 23일, 미국활동 중 선미가 활동 중단을 발표하여 새 멤버 혜림이 투입되었다.

추후 2015년 7월에는 새 앨범 발매 전, 결혼한 선예와 연기자 전향으로 소속사가 달라진 소희가 탈퇴함과 동시에 활동 중단 상태였던 선미가 재합류해 현재의 4인조가 되었다.

2007년 하반기부터 2008년까지 약 1년의 기간 동안 「Tell me」, 「So hot」, 「Nobody」의 3연속 히트곡 라인을 탄생시키며 발라드 위주의 가요계 흐름을 뒤엎고 '국민 걸그룹'으로서 압도적인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2009년 초 2세대 걸그룹 중 가장 먼저 국제 진출에 나섰는데,「Nobody」가 아시아 전역에서 대히트하여 한국 가수 최초로 미국 지상파 TV 토크쇼에 출연하고, 빌보드 Hot 100 차트 진입에 성공하며 초반 K-POP 열풍의 선두에 섰다.

 

2016년, 걸그룹 세대교체의 흐름 속에서도 멤버 전원의 전곡 작사, 작곡, 악기 녹음으로 완성한「Why So Lonely」로 3분기 디지털 음원 종합 1위를 차지하고, 2세대 걸그룹으로서는 유일하게 각종 연말시상식의 여자그룹상 후보에 오르며 아이돌 걸그룹을 넘어 '셀프 프로듀싱 밴드'로서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하지만 데뷔 10년 만인 2017년 1월 전속 계약 만료로 예은과 선미가 JYP엔터테인먼트를 떠나고, 유빈과 혜림은 JYP엔터테인먼트와 재계약을 체결하며 데뷔 10주년인 2017년 2월 10일 굿바이 싱글 「그려줘」를 끝으로 그룹 해체를 공식화했다.

해체 이후에도 각 멤버들은 서로 친분을 유지한 채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는 중이며, 특히 지금까지도 대중들을 비롯한 많은 후배 아이돌들에게 레전드 걸그룹이자 롤모델로 회자되고 있다.

 

2020년 6월, 부러우면 지는거다 방송을 통해 소희, 선미, 유빈이 혜림의 결혼을 축하하는 브라이덜 샤워 현장에 함께하였다. 사정상 선예, 예은은 영상 통화로 함께했으나 결혼식 당일에는 현장서 축가를 불러주었다. JYP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 프로듀서까지 방송에 출연하며 여전히 끈끈한 인연을 자랑하는 모습에 팬덤을 넘어 대중들도 훈훈한 반응을 보였다.

 

콘셉트

이 그룹의 메인 콘셉트는 복고. 한국의 걸그룹들이 매 앨범마다 새로운 음악과 비쥬얼을 선보이는 것과 달리, 원더걸스는 60~80년대의 미국 팝을 기반으로 하는 모습들만 보여주었다.

특히 원더걸스 사운드하면 레트로라고 알려질 정도로 레트로를 주로 하는 그룹인데 전성기를 함께한 Retro Trilogy(텔소노)를 비롯해 2DT까지 타이틀이 모두 레트로곡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데뷔 곡인 '아이러니'나 '이 바보'를 보면 초기엔 복고콘셉트을 지향하지 않았으나 '텔소노'의 메가히트로 인해 아예 팀 컬러를 복고로 잡아버린 듯 한데, 상술했듯이 원더걸스란 이름이 박진영의 아이디어가 아닌 외부인의 아이디어였기에 초기 기획단계에서 '복고'는 의도치 않은 방향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확실히 데뷔곡인 '아이러니'를 보면 복고의 모습보다는 소녀시대와 같이 군무를 주로 이용한 춤이 돋보였는데 그 당시 소녀시대의 콘셉트이 청순이었다면, 원더걸스는 요즘 말로 걸크러시가 메인 콘셉트였던 셈.

2007년도 당시만 해도 여자아이돌로서는 도전적인 콘셉트였다. 이후 복고 콘셉트로 변신에 성공해 3연속 메가히트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미국 진출 후에는 레트로팝에만 국한되지 않고 소울과 업템포를 믹스하거나(Be My Baby), 덥스텝과 셔플리듬을 가지고 나오기도 하고(The DJ Is Mine), 일렉트로 힙합과(Like This) 일렉트로닉 사운드곡까지(Like Money)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기도 했다.

때문에 원더걸스의 이런 활동양상이 후배 아이돌들이 아이돌이라는 태생적 한계에 머무르지 않고 아티스트를 표방하며 다양한 장르와 콘셉트을 추구하게 되는 데에 있어 초석을 닦았던 것으로 평가를 받기도 한다.

2015년에 4인조로 개편하고 밴드와 댄스를 겸하는 그룹이 된 뒤에도 1980년대의 일렉트로 펑크(funk) 팝 혹은 프리스타일(freestyle), 레트로 팝과 슬로우 잼을 선보였고 박진영이 타이틀곡 제작에서 손을 뗀 2016년 싱글에서는 레게팝이나 70년대 밴드사운드 또 팝 록 장르의 곡도 수록하는 등 곡에 따라 복고라는 메인콘셉트을 유지하거나 또는 변신해가면서 다양한 장르를 현대적으로 소화해내는 그룹이 되었다.

비록 복고가 메인콘셉트으로 정해지긴 했으나 활동 곡 중 '아이러니', '이 바보', 'Like This'를 보면 미국의 어반 힙합 스타일이 주를 이루는데 프로듀서인 박진영의 음악 취향이 강하게 반영되는 그룹이었다.

원더걸스의 데뷔 앨범부터 2015년 REBOOT 앨범까지의 타이틀곡을 다 박진영이 만들었던 것을 보면 이 그룹 자체에 박진영이 들인 노력을 알 수 있는 부분.

소속 가수였던 박지윤의 반전이미지메이킹에 성공해 프로듀서로서 역량을 인정받은 이후 데뷔와 동시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미쓰에이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기까지, 부담없이 들을 수 있지만 음악성도 인정받는 박진영표 걸그룹 노래의 대표주자 격인 존재가 바로 원더걸스였던 것.

 

특징

삼촌팬이라는 기존 가요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소비층을 오랜만에 텔레비전 앞과 음반매장 안으로 다시 끌어낸 걸그룹이다. 10~20대를 비롯한 삼촌팬을 코어팬층으로 흡수했고 음악은 어린아이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남녀노소 모두에게 폭넓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다. 팬층의 성별로 따지면 다른 걸그룹과 달리 주로 남성보다 여성 쪽에서 상당히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전성기로 알려진 2007~8년에는 남녀 비율이 거의 4 : 6으로 여성이 조금 많은 편이긴 했지만, 지금은 여성 쪽의 비율이 더 늘어난 편.

요즘 보기 드물게 소속 멤버 모두가 작사, 작곡 능력을 보유한 아이돌 그룹이며, 걸그룹으로선 유일하다.

원더걸스의 최고의 무기는 음원 성적인데 음원 성적은 데뷔 때부터 현재까지 최고 수준으로 음반 점수나 방송 점수가 다른 걸그룹보다 떨어져도 항상 1위 후보에 오르던 이유는 오로지 음원 성적 하나 때문이었다 Tell Me 이후로 음반을 냈다 하면 타이틀곡이 음원 사이트에서 1위를 안 한 적이 없고, 미국 활동 도중에 낸 정규 2집 때는 소녀시대와 붙어서 지긴 했으나 애초에 음반과 방송 점수에서 밀려서 진 것이지 음원 성적은 소녀시대보다 꽤 높았다. 2016년에 발매한 싱글 4집 활동 때는 비스트를 꺾고 엠카운트다운에서 1위를 기록했는데 이 때 원더걸스는 음반 판매 점수, 선호도 점수, 실시간 문자 투표 점수에서 비스트에게 밀리고도 음원 점수 만점으로 비스트를 눌렀다. 이후 인기가요에서도 1위를 기록했는데 이 때 원더걸스의 음원 점수는 최고점인 5500점이었으며 SNS 점수도 3500점으로 가장 높았다. 전성기에서 물러났다는 평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성은 여전히 최정상급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술했듯이 음악 장르가 댄스와 밴드인데 이 점에서 AOA와 비슷하면서 조금 다르다. AOA는 밴드로 먼저 시작한 뒤, 댄스와 병행하다 지금은 댄스 그룹으로 고정된 반면, 원더걸스는 댄스 그룹으로 오랫동안 활동하다 현재 댄스 그룹과 밴드를 병행하고 있다.

또 한가지 눈에 띄는 특징으로는 단순히 활동 성적에만 치중하기 보다는 도전에 의의를 두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데뷔 때부터 여러 가지로 도전적인 면이 많았는데 SG워너비의 대박으로 미디움 템포 발라드 가수 & 그룹이 대성하게 된 가요계에서 아이돌, 그것도 S.E.S. 핑클 이후 찾아보기 힘들었던 "걸그룹"으로, 게다가 아이돌 걸그룹으로썬 꺼려질 만한 복고 콘셉트으로 대성공을 거둬 본격 아이돌 제2의 전성기 및 걸그룹 전성 시대를 이끈 것만으로도 엄청난 도전의 성과라 할수 있겠다. 물론 미국 진출 역시 결과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어쨌든 도전정신의 산물이고, 유빈의 언프리티 랩스타 2 출연은 9년차 걸그룹 주력 멤버의 행보로는 상당히 특이한 케이스였다. 이번 정규 3집 컴백때도 좀 생소할수 있는 밴드+댄스 병행 콘셉트에 도전하며 주목할만한 성과를 냈다. 2016년에는 새 앨범 발매를 앞두고 선공개곡 '아름다운 그대에게'를 LP판으로 먼저 발매했는데 LP판은 소속사 사장이 마이너한 취향으로 소문난 인피니트 정도를 제외하면 그 어떤 아이돌 그룹도 한 적이 없다.

데뷔 준비기에는 래퍼 없이 보컬로만 구성하려 했으나, JYP표 곡의 기승전결에는 랩이 필수적이기 때문인지 가창력이 달리는 현아와 소희 중 래퍼에게 요구되는 섹시한 이미지가 충족되는 현아가 랩을 담당하게 된다. 후에 합류한 유빈은 오소녀 시절부터 래퍼 포지션이었기 때문에 바로 래퍼 포지션을 맡았다.

멤버들 대부분이 단발을 경험한 것이 특징. 물론 'Nobody' 때 전부 단발 가발을 썼지만 이것을 제외해도 예은과 소희를 제외하고 전부 단발로 활동했던 경험이 있다. 선예는 'So Hot'과 'Like This' 활동 때, 유빈은 'Tell Me' & '이 바보' & 'So Hot' 때, 선미는 솔로 활동 '24시간이 모자라' 때, 혜림은 'I Feel You'부터. 심지어 하나의 앨범밖에 활동하지 않은 현아도 당시에는 단발로 활동했다. 예은의 경우 'Wonder Begins'와 'Wonder Party' 앨범 자켓에서 단발을 하고 촬영한 사진이 몇몇 있으나 전부 다 가발이고 활동 자체는 긴 머리로 했었다. 소희는 'Nobody'를 제외하면 단발 가발도 쓴 적이 없다.심지어 원더걸스 활동 내내 늘 앞머리를 깐 장발로 활동했고 연기자로 전업한 지금도 마찬가지다.

반면 다른 걸그룹과 달리 확실하게 없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댄스 담당, 또 하나는 예능 담당이다. 댄스의 경우 데뷔 초에는 현아가 물론 독보적인 댄스 담당이었지만, 현아의 탈퇴 이후에는 그 포지션이 애매해졌다.

정규 3집 때는 아예 프리스타일 장르로 활동하면서 더욱 댄스 담당이 있을 턱이 없을 듯.

그나마 유빈이 텔미 댄스브레이크 때 선예, 소희와 나누어 담당한 적이 있고 예은은 데뷔 전 댄스동아리 회장이었다고 하지만 겨우 고등학교 아마추어 동아리였다.

원걸 데뷔 후에는 현아, 선예, 소희에게 밀려 춤 실력을 보일 일이 없다. 선미와 혜림은 데뷔 때부터 춤 잘 추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나마 혜림은 유연성이 상당히 좋기 때문에 춤을 못 추는 정도까지는 아니다. 문제는 선미인데 몸의 비율이 좋아 위에서 설명한대로 춤선 자체는 예쁘지만 유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다른 아이돌에 비하면 그렇게 잘 춘다 보기는 어렵다.

2016년 1월에 있던 텐센트 콘서트 Be My Baby에서 유독 어깨춤을 잘 소화하지 못하는 편.

팬들은 멤버들이 춤을 못 춰서 댄스 담당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 안무가 집중되는 경우가 줄어들다보니 댄스 담당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며 또한 멤버 중에 누가 제일 춤을 잘 추는 가도 의견이 여러 가지로 나뉘어진다. 대체적으로 많이 언급되는 것은 유빈, 선예, 소희 정도.

예능 담당 역시 아이러니 시절 야생마 캐릭터로 예능 포텐이 보이던 현아가 탈퇴하면서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 유독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하다. 멤버들이 전반적으로 워낙 예능에 대한 감이 없고, 프로그램에서 강하게 밀고나가는 다른 패널들과 아이돌들에게 밀려 제대로 된 멘트조차 날리질 못한다.

그나마 성격이 다부진 예은이 말을 하긴 하는데, 미국 갔다온 후로 병이라도 생겼나 싶을 정도로 방송 나와서 우는 게 습관.

간신히 뭔가 멘트를 날려봐도 방영되는 분량을 보면 싸그리 편집되고 리액션만 나온다고. 2015년 SNL 코리아에 출연했을 때는 유빈이 스스로 우리는 노잼 그룹으로 유명하다며 그들 스스로 예능에 약하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다.

2011년 활동 중에는 그나마 유빈 예은, 그리고 조권과 같이 나올 때 한정으로 선예가 그나마 분량을 만드는 편이었다.

조권이 붙어있지 않는 선예는 말은 잘 하는데 웃기지는 못 한다. 선미가 특유의 4차원 캐릭터로 예능에 잘 어울릴 것이라는 평이 많지만, 선미의 4차원은 단순하게 엉뚱한 캐릭터가 아닌 진짜로 정신이 4차원으로 날아가버리는 캐릭터인 까닭에 장담할 수는 없다.

한편 REBOOT활동에서는 혜림이 새로운 예능의 기대주로 떠오르고 있다. 선미와는 정반대로 조용히 원기옥을 모으고 있다가 뜬금없는 타이밍에 한방을 터트리는 스타일이다. 최근에는 남아 있는 네 멤버가 전부 밝은 캐릭터들인지라 전체적으로 예전보다 예능감이 늘었다. 특히 막내 라인인 선미와 혜림의 활약이 매우 도드라지는 편으로 이전의 주요 예능 담당인 예은은 과거에 비해 비교적 조용해지면서 예능 담당은 예은에서 혜림으로 바뀌어가는 추세다.

2015년부터는 리더인 선예가 탈퇴하면서 리더도 없는 그룹이 되었다. 모 인터뷰에 의하면 초반에는 예은이 리더를 잠시 맡았지만 예은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멤버들이 이 달의 반장을 뽑는 것으로 바꿨다고 한다.

 

단체 안무 때는 아이돌들이 그렇듯이 환상적인 팀워크를 보여주는데 이상하게도 인사할 때 만큼은 전혀 맞추지 못 하는 특징이 있다. 인사할 때마다 파도가 넘실넘실 흘러서 상당히 어수선해 보이는 게 특징. 가끔은 안무 때도 뭔가 안 맞아서 위의 사진처럼 자체 거울 모드가 되기도 한다. 이게 신인 때만 그런 게 아니라 텔쏘노 심지어 현재도 마찬가지라는 것. 팬들도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어 개그짤로 잘 써먹고 있다. 더 많은 원더걸스의 팀워크를 보고 싶다면 링크 참조.

특이하게도 음악 방송에 출연할 때마다 단체샷에서 항상 구석에 서 있다. 이것 역시 신인 시절부터 현재까지 쭉 유지되고 있는데 팬들은 이 때문에 원걸이 단체샷에서 중앙에 서있으려면 1위 후보로 만들어 강제로 중앙에 서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Be My Baby' 때는 1위를 했더니 앵콜 공연에서 유빈이 실수로 트로피를 밟아서 박살내는 사고(?)를 치기도 했다. 링크

한국 활동과 미국 활동을 병행하고 있었으나 선예의 결혼으로 활동을 잠정 중단했으며, 2012년 연말 가요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지 않았다. 2013년에는 활동을 중단했던 선미가 깜짝 솔로로 등장해 재합류 및 그룹 컴백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오리지널 멤버 3인의 계약기간 만료로 안소희가 BH엔터테인먼트로 이적했다.

2014년엔 선예가 선교활동을 위해 아이티에서 5년을 머무르기로 공언했고, 예은도 솔로앨범을 발표한지라 이대로 이름만 남은 걸그룹이 될 줄 알았지만 2015년 성공적으로 돌아왔다.

정상급 걸그룹인 것 치고는 멤버 교체가 상당히 많았던 걸그룹. 멤버변화를 기수로 따져도 4기로 나뉜다.

맨 처음 데뷔 당시에는 유빈 자리에 현아가 위치해있었으나 건강상 이유로 탈퇴하였고, 선미의 활동중단 선언 이후로는 혜림이 합류하여 쭉 활동 중에 있다. 2015년엔 선미가 재합류하고, 선예와 소희가 공식적인 탈퇴를 거치면서 4기 시대를 열게 되었다.

유튜브 조회수도 나름 높은데, 유튜브가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이전이었던 2008년도에 업로드됐던 Nobody의 엠카운트다운 라이브 동영상이 약 6400만으로 당시 한국 동영상 1위였다. Be My Baby는 3500만,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Like This도 조회수가 2700만으로 높은 편이다. 무엇보다 정규 3집의 첫번쨰 선미 베이스 티저 조회수는 약 230만이다. Like Money도 1000만을 돌파하였으며, 안무 영상은 800만을 돌파하는 등 유튜브에서도 좋은 성과를 보여준다.

워낙 큰 성공을 거둔 걸그룹 아이돌이다 보니, 여러 후배 걸그룹들이 그들을 롤모델로 삼는 경우가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걸그룹으로 레이디스 코드가 있다. 한 때는 타이틀곡 'So Wonderful'이 노래 제목이나 콘셉트에서 원더걸스와 상당히 유사하다며 논란이 있기도 했지만 신인 시절부터 원걸을 롤모델로 삼는다는 인터뷰를 꽤 해서 원더걸스 팬덤 사이 내에서도 평가가 좋은 편.

 

인원 변천사

데뷔 당시 멤버는 89년생 고3이었던 예은, 선예, 92년생 중3이었던 선미, 현아, 소희 중3 멤버가 3명이라는, 평균나이 만 15세정도의 전무후무한 나이대로 구성돼있었다. 그러다 현아가 건강상의 문제로 정규 1집 준비 중 탈퇴했고, 오소녀 출신의 88년생 유빈이 급하게 합류했다. 이후 선미가 학업 관계로 2010년 2월에 활동을 중단하였으며 동년 3월에 새 멤버 혜림이 들어왔다. 소희는 2013년 12월에 계약만료로 JYP를 떠난후 2014년 2월 11일에 BH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하였으나, 원더걸스 탈퇴는 하지 않는다 밝혀서 향후 언제든 원더걸스로서 활동할 수 있다고 했었으나... 2015년 7월 20일 자로 결국 소희는 탈퇴 입장을 밝혔다. 선예 역시 같은 날 탈퇴를 하였다. 그리고 활동중단 했었던 선미가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선미가 활동 중지 시절로 나오지 않았을 때는 이른바 '6인걸스라고 해서 원더걸스 완전체로 돌아오길 바라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대중들 사이에서 현아처럼 탈퇴로 인식되어있든간에 선미는 여전히 원더걸스 멤버(탈퇴가 아니고 활동중단)이고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완전히 0%였던 것은 아니기 때문. 혜림이 아리랑TV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팀의 멤버로 Sun, Yenny, Yu-bin, Mimi, Sohee, Lim라고 언급했는데 여기서 Mimi가 바로 선미인 것. 그리고 마침내 선미가 원더걸스 복귀가 확정되면서 드디어 6인걸스를 볼 수 있는 듯 했으나, 같은 날 선예와 소희의 탈퇴가 확정이 되어 결국 6인걸스는 꿈의 라인업으로 남게 되었다.

현 4인 체제는 묘한 특징이 있는데 예은과 혜림은 비교적 높은 톤인 반면, 유빈과 선미는 낮은 톤이다. 또한, 예은과 선미가 보컬 라인이면 유빈과 혜림은 래퍼 라인이며 선미와 혜림은 92년생으로 막내라인, 유빈과 예은이 언니라인을 유지하고 있다.

정규 3집 이전까지 응원법에서는 민선예 박예은 선미짱 안소희 김유빈 우혜림 순서로 불렸다. 정규 3집부터는 박예은 이선미 김유빈 우혜림으로 바뀌었다.

아이러니하게 원조 원더걸스에서 (선예, 현아, 소희, 선미, 예은) 가장 마지막으로 합류했던 예은만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함께해온 유일한 멤버다. 마지막 멤버가 원더걸스의 역사이자 전설이 되어버린 케이스.

 

평가
  • JYP 엔터테인먼트 최초의 아이돌 걸그룹
  • 최초로 선거 홍보대사가 된 아이돌
  • 빌보드 HOT 100을 한국인 최초로 달성한 그룹
  • 美 Fuse TV 선정 2015년 올해의 앨범 20선, 일본 아이튠즈 선정 베스트 K-POP 앨범, 빌보드 선정 'The 10 Best K-Pop Albums of 2015' 1위인 |REBOOT를 프로듀싱한 아이돌
  • 미국 Fuse TV 20 best albums of 2015 Top 20 안에 든 유일한 한국 가수
  • 국민참여재판  대법원 아이돌 최초 홍보대사
  • 국내 최초로 플래시몹을 뮤직비디오에 시도하여 관련 열풍을 이끈 그룹
  • 참여정부에서 유일한 청와대 걸그룹 초청자
  • 이명박 정부 최초의 청와대 걸그룹 초청자
  • 아이돌 중 최초로 그룹명을 내건 화장품 브랜드 런칭
  • 걸그룹 중 최초 국회 대상 수상자
  • 걸그룹 중 최초 LP판 발행
  • 걸그룹 중 최초로 멤버 전원이 스스로 작사, 작곡한 앨범을 발매
  • 걸그룹 최초 리얼리티 프로그램 방영



2세대 아이돌의 신호탄을 알렸다는 점에서 사실상 오늘날 활동하는 모든 아이돌들에게 영향력을 가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음악적으로는 소위 '후크송' 으로 일컬어지는 트렌드를 주도한 그룹이다. 동시대에 활동하던 빅뱅이 주로 신디사이저를 기반으로 한 사우스 힙합과 시부야계에서 영향을 받은 타이틀곡들을 내세우며 크게 흥한 반면, 원더걸스는 아예 반복적인 후렴구를 강조하는 후크송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 

전성기 인기가 너무 압도적이라 2010년 이후엔 상대적으로 인기를 저평가(내지는 후려치기) 당하기도 했는데, 오히려 긴 공백기와 짧은 활동기간에도 불구하고 늘 연간차트 순위권에 든 저력있는 그룹이었다.

 

수상 내역

2007년

  • 《2월 싸이월드 디지털 뮤직 어워드》 - Rookie Of The Month (Irony)
  • 《10월 싸이월드 디지털 뮤직 어워드》 - Song Of The Month (Tell Me)
  • 《멜론 뮤직 어워드》 - 올해의 노래상 (Tell Me)
  • 《제9회 M.net KM Music Festival (MKMF)》 - 여자그룹부문 신인상
  • 《제8회 대한민국 국회 대중문화&미디어 대상》 - 대중가요 부문
  • 《제8회 대한민국 영상대전》 - 포토제닉상
  • 《제22회 골든 디스크》 - 디지털음원부문 본상
  • 《제22회 골든 디스크》 - 인기상
  • 《2007 KBS 뮤직뱅크 연말결산》 - 올해의 노래 (Tell Me)


2008년

  • 《제17회 서울 가요 대상》 - 신인상
  • 《제20회 한국PD대상》 - PD가 뽑은 출연자상 가수부문
  • 《제5회 한국대중음악상》 -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노래상 (Tell Me)
  • 《6월 싸이월드 디지털 뮤직 어워드》 - Song Of The Month (So Hot)
  • 《M.net 20's Choice》 - Hot 클럽뮤직 (So Hot)
  • 《9월 싸이월드 디지털 뮤직 어워드》 - Song Of The Month (Nobody)
  • 《10월 싸이월드 디지털 뮤직 어워드》 - Song Of The Month (Nobody)
  • 《골든디스크》 - "명예신인상"
  • 《멜론 뮤직 어워드》 - 올해의 노래상 (So Hot)
  • 《제10회 M.net KM Music Festival (MKMF)》 - 여자 그룹상
  • 《제10회 M.net KM Music Festival (MKMF)》 - 뮤직비디오 작품상 (Nobody)
  • 《제10회 M.net KM Music Festival (MKMF)》 - 올해의 노래상 (Nobody)
  • 《제9회 대한민국 영상대전》 - 포토제닉상
  • 《제25회 코리아 베스트 드레서》 - 가수부문
  • 《제23회 골든디스크》 - 디지털음원부문 본상
  • 《2008 코리아 패션&디자인어워드》 - 스타일 아이콘상
  • 《2008 외신홍보상》 - 가수부분
  • 《제1회 니켈로디언 코리아 키즈 초이스 어워드》 - 좋아하는 여자가수상


2009년

  • 《2009 아시아 모델 페스티벌 어워즈》 - 아시아 스타상
  • 《제18회 하이원 서울가요대상》 - 본상
  • 《제18회 하이원 서울가요대상》 - 디지털 음원상
  • 《제18회 하이원 서울가요대상》 - 대상
  •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 - 네티즌이 뽑은 올해의 음악인 그룹부문
  • 《2009 대한민국 콘텐츠 어워드》 - 해외진출아티스트부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2011년

  • 《2011 중국 차이나 모바일 시상식》- 최고 판매 해외 그룹상
  • 《제1회 한국패션 100년 어워즈》- 엔터테인먼트 최고의 그룹상


2012년

  • 《제1회 가온차트 K-POP 어워드》- 11월 음원부문 올해의 가수상 (Be My Baby)


2013년

  • 《제2회 가온차트 K-POP 어워드》- 6월 음원부문 올해의 가수상 (Like this)


2014년

  • 《일본 제15회 에이젝스 아시아 어워드》- 베스트 여자그룹상


2015년

  • 《美 Fuse TV BEST 2015》- 올해의 앨범 20선 그중 유일한 한국 가수
  • 《일본 iTunes BEST 2015 》- 베스트 K-Pop 앨범
  • 《멜론 다중音격》- 2015 올해의 가요 앨범
  • 《빌보드 The 10 Best K-Pop Albums of 2015》- 1위


2016년

  • 《中 큐 뮤직 아시아 성전(Ku Music Asian Music Awards)》- 아시아 베스트 퍼포먼스 상


2017년

  • 《제6회 가온차트 K-POP 어워드》- 7월 음원부문 올해의 가수상 (Why So Lonely)
  •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팝 노래 (Why So Lonely)

 

인기

데뷔 초기에는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소녀시대와 함께 남성팬의 지지를 양분하고 있었다. 소녀시대가 한국의 걸그룹로서 갖춰야할 기본에 충실한 걸그룹이었다면, 원더걸스는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박진영 특유의 독특한 스타일이 가미된 그룹이었다. 다만 대중적인 인기 자체는 2007-2008시기에는 원더걸스와 소녀시대 사이에는 넘사벽의 차이가 있었다. 애초에 이때는 원더걸스랑 빅뱅이 중심이 되어 가요계 자체의 판도를 아이돌 판으로 바꿔놓던 시기였다.

오랫동안 끊겨 있던 대형 걸그룹의 계보를 이었다. 싱글 1집 아이러니 때만 해도 걸그룹 자체에 별 관심이 없던 시기라 인기는 중박 정도에 그쳤으나, 첫 정규앨범이자 그들의 대표곡인 'Tell Me'의 공전의 대히트로 인하여 당시 '국민 여동생 그룹'으로 불렸을 정도로 국민적인 인기를 누렸다. 아직까지도 "후크송" 하면 이 곡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절정의 인기를 끌었다. 요즘에야 후크송이나 후크송의 요소를 곡 곳곳에 갖추고 있는 곡들이 많지만 당시에는 그런 개념이 거의 전무하다고 볼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원더걸스가 최초로 후크송이라는 개념을 국내 가요시장에 소개했고, 이후 특히 아이돌 시장에서는 일종의 필수요소가 되었다.

그 인기는 지상파 방송사 메인 뉴스에서 제법 보도됐을 정도다. 'Tell Me'를 마구 따라하는 동영상을 올리는 사람들 덕분에 UCC의 보급과 자리 매김에 일조하기도 했었다. 삼성경제 연구소는 2007년 10대 히트 상품에 원더걸스를 지정하였으며, 원더걸스는 한국 갤럽선정 2007~2008 2년 연속 '올 한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한 가수 선호도 1위', 2007~2008 2년 연속 '올 한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한 가요 선호도 1위'를 차지하기도 했었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개성 강한 복고풍 콘셉트, 깜찍한 춤으로 'Tell Me' 무대가 호평을 받자 JYP 엔터테인먼트에서는 박진영이 미국에서 보낸 '텔미 원더걸스 팔찌춤 원격강의' 영상을 다음 티비팟에서 공개하였다. 이 동영상이 큰 인기를 끌면서 'Tell Me' 패러디 열풍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두 번째 싱글 타이틀곡 'So Hot' 역시 발표와 동시에 각종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석권, 대대적인 인기몰이를 했다. 같은 해에 'Nobody'를 발표, 다시 한 번 공전의 히트를 쳤다. 이 두 곡으로 2008년은 명실상부한 원더걸스의 해라는 평가를 받는다. 'So Hot'과 'Nobody'는 걸그룹이라는 것, 팬사인회가 한번도 없었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상당히 준수한 판매량인 한터 기준 7~8만 장을 기록하며, 음반 판매량도 탄탄한 모습을 보인다. 음반 판매량은 팬덤의 크기에 비례하므로 팬덤 역시 탄탄함을 보여준다. 실제로 2009년 초 남자 아이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단독 콘서트를 국내외에서, 여성 그룹으로서는 핑클 이후 10년만에 열며 탄탄한 팬베이스를 입증하기도 했다. 대중성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넘사벽. 2008년 가요 선호도 1위가 'Nobody', 3위가 'So Hot'이었다. 하이원 서울가요대상에서도 당시 함께 전성기를 달리고 있던 빅뱅과 동방신기를 제치고 여성 그룹 최초 단독 대상을 수상하였다. 2008 MKMF에서도 'Nobody'로 3대 대상 중 하나인 올해의 노래상을 수상하였다.

더 대단한 것은 이와 같은 엄청난 커리어를 'Tell Me', 'So Hot', 'Nobody' 이 세 곡만으로 이뤄냈다는 것. 'Tell Me'부터 'Nobody'로 이어지는 Retro Trilogy를 팬덤은 '텔소노'라고 부르기도 한다. 텔소노 삼연타 히트에 비견될 만한 파급력을 보여준 연속 히트 퍼레이드는 원더걸스 이후로 아직까지도 등장하지 않고 있다.

2009년 미국 진출을 위해 한국을 떠나자마자 한국에서 오랫동안 멸종되었던 걸그룹이 우후죽순같이 쏟아져나오는 걸그룹 대란이 일어나 많은 팬들은 흩어지게 되었고, 이제는 정상에선 한 발 물러선 모습. 특히 아래 언급되는 선예의 결혼 소식 이후로는 그런 현상이 두드러져 보이는 모습이다.

2009년 3월 28일 첫 단독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국내 활동을 마무리함과 동시에 미국에 진출하였고 조나스 브라더스 콘서트 오프닝 게스트로 전미 투어를 했으며, 'Nobody' 앨범이 발매된 후 한국 최초로 빌보드 HOT 100에 올랐다. 빌보드 메인차트인 HOT 100에 순위를 올린 것은 분명 축하받을 쾌거다.

필리핀에서는 'Nobody' 가사를 모른다고 살인 사건이 났다. 필리핀, 중국, 대만, 홍콩,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권과 동남아권에서의 'Nobody'의 인기는 우리나라에서의 'Tell Me'의 인기과 비견될 정도라고 한다. 유투브에서 'Nobody' 뮤직비디오는 조회수 2700만을 넘어섰고, 라이브 동영상의 경우는 5700만을 넘었다. 당시 한국 가수 중 압도적 1위였다.

2011년 이전까지는 오랜 공백기로 인해 팬덤이 붕괴했었으나, 11월 발표한 신곡 'Be my baby'가 11월 가온차트 음원 탑, 2011년 음원 연간랭킹 탑3 안에 들면서 다시 부활했다. 2012년 상반기 대중 선호도 조사에서 긴 공백기에도 불구하고 여자 가수 부문 3위, 걸그룹으로는 소녀시대 다음으로 2위를 차지하면서 부활을 증명했다.

2008년에 탑까지 찍었던 그룹이기 때문에, 실패로 끝난 미국활동과 팬덤의 와해 이후로도 대중적으로 1군 걸그룹으로 인식하고 있기는 하다. 물론 최전성기 때의 인기는 아닐지라도 아직도 음원 성적은 잘 나오는 편이고 정규 2집 실시간 수록곡 줄세우기 곡의 인지도도 높으니 해체 전까지 1군 걸그룹의 위치를 그대로 유지한 채 그룹 커리어를 끝냈다.

미국에서 3년 동안 'Nobody'를 우려먹다가 요즘에는 그나마 원더걸스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시트콤 '더 원더걸스'도 하고 있고, 현지에서 시트콤 삽입곡인 'The DJ Is Mine'과 Akon이 피쳐링한 'Like Money'도 발매되었다. 두 곡의 성적은 현지에서 잘나가는 건 아닌 것 같고, 정작 영어곡인데도 국내 차트에서 성적이 중박 이상인 기현상이 일어났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미국 시장을 공략한 활동을 할 예정.

 

라이벌 소녀시대

2007년에 데뷔해 정반대의 스타일들을 선보였던 두 걸그룹은 늘 라이벌 구도였다. 2007년~2008년에는 원더걸스의 압승이었으나, 2009년부터 소녀시대가 압도적인 팬덤과 함께 대중성을 잡아내 대히트를 거두었고 원더걸스가 미국 진출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라이벌 구도가 굳혀졌다.

사실 2007년에는 두 걸그룹의 라이벌 구도 자체가 생성될 수 없었다. 소녀시대가 <다시 만난 세계>를 발매하며 카라에 이어 데뷔하고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는 동안, 원더걸스는 이미 <Tell Me>로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국민 걸그룹으로 우뚝 올라섰기 때문. 

본격적인 라이벌 구도는 2008년 상반기부터 시작되었다. 소녀시대가 정규 1집이 발매된 후 <소녀시대>, <Kissing You>, <Baby Baby>가 연달아 1위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

'뮤직뱅크'에서 원더걸스가 <Kissing You>를, 소녀시대가 <Tell Me> 무대를 선보여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자신들만의 새로운 해석으로 신선한 모습을 보여줘 두 그룹의 팬덤 모두를 열광시켰다. 본인들 입장에선 "약간 오글거렸다"고 뒤에 밝히긴 했지만, 두 그룹의 멤버들 역시 전반적으로 친한 모습을 보며주며 서로의 팬을 자처하는 등 좋은 라이벌 구도에서 나온 훈훈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 원더걸스가 <So Hot> <Nobody>로 연이은 대박을 터뜨리며 입지를 굳혀갈 때 소녀시대는 후속 음반이 나오지 않은 채 오랜 기간 공백기를 가져 궁금증을 자아냈다. 원더걸스가 승승장구하는 동안, 소녀시대는 '곧 해체하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 정도로 두 그룹의 명암이 상반되던 시기였다.

그리고 2009년 1월, 소녀시대가 악재를 딛고 <Gee>를 발매했다. <Gee>는 그야말로 신드롬을 일으키며 각종 차트를 휩쓸었고, 소녀시대는 원더걸스 못지않는 전성기를 갖게 된다. 한편 원더걸스는 2009년 초, 미국 진출을 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뜬금없는 해외 진출로 인해 공백기는 길어져만 갔고, 그 때문에 그동안 쌓아올린 인지도와 팬덤이 와해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대망의 2011년, 두 그룹이 동시 컴백을 하면서 그 해 가요계의 최대의 화젯거리로 자리매김했다. 원더걸스가 오랜만의 컴백임에도 불구하고 음원차트에서 소녀시대를 이겼으나, 막강한 팬덤을 지닌 소녀시대가 음반 판매량에 있어 무서운 화력을 보여주었고, 원더걸스의 2배에 이르는 방송 점수로 뮤직뱅크 1위는 소녀시대에게 내어주어야 했다. 훌륭한 퍼포먼스와 노래로 호평을 받으며 좋은 음원 성적으로 활동을 마무리했다는 점이 고무적이지만, 음악 방송 1위를 많이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다.

2015년, 원더걸스의 정규 3집과 소녀시대의 정규 5집 발매 시기가 다시 겹쳤다. 두 그룹 모두 호성적을 보였다. 여담으로 이 활동 시기에 V LIVE 방송에서 두 그룹이 함께(!) 출연해 친분을 과시했다.

종합적으로 보자면, 원더걸스가 후크송 & 2세대 아이돌 전성시대를 처음으로 이끌었다는 상징적인 점과 걸그룹 최고의 대중성을 가진 반면, 소녀시대는 걸그룹 전성시대에 탑으로 군림했다는 점과 못지않은 대중성, 강력한 팬덤을 모두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도 원더걸스가 미국 진출을 안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하면서 원더걸스의 활동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원수 JYP

대중들 사이에서도 라이벌로 꼽히는 만큼 팬덤들 간의 경쟁심은 매우 치열했지만, 정작 멤버들끼리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 당장에 팬들에게도 인정받은 열렬한 태연의 팬인 선미만 봐도 알 수 있으며, 유빈도 태연과 친분이 있음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개했다. 멤버들부터가 선예, 예은 태연, 제시카, 써니, 티파니, 효연, 유리가 89년생, 수영이 빠른 90년생으로 동갑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친분이 생기기도 쉬워졌을 것이다.

2017년 원더걸스가 공식적으로 해체함으로써, 원더걸스 VS 소녀시대의 라이벌 구도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KBS '연예가 중계'에서 조사한 '대한민국 세기의 라이벌 TOP 100' 중 4위에 올랐다.

2018년 9월, 선미 소녀시대의 새 유닛 소녀시대-Oh!GG의 앨범 발매 시기가 겹쳤다. 음반 및 유튜브 조회수는 소녀시대-Oh!GG가 앞섰지만, 음원차트에서 앞서고 방송 활동을 활발하게 한 선미가 대부분의 음악 방송 트로피를 가져갔다.

 

미국 진출 관련

한창 전성기를 누리던 2009년 초, 갑작스레 미국 진출을 선언한다. 엄청난 인기를 누리던 국내 시장을 뒤로 하고 미지의 영역인 미국 시장에 도전하겠다는 선택에 우려도 많았지만 격려 또한 많았고, 이후 한동안 국내 활동이 잠정 중단된다.

워낙 인기가 많았던 걸그룹이었기에 미국 진출 초기엔 국내 활동이 없음에도 언론의 관심이 상당했다. 초기에는 미국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다소 설레발스러운 기사도 상당히 많았고, 동시에 가 똑같이 미국에 진출해, 비록 거품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는 해도월드스타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기에 이와 비교되며 JYP 전성기의 양대 산맥으로 추앙받기도 했다. 게다가 2009년 중반 일시적이기는 해도 빌보드 차트 TOP 100에서 76위에 랭크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는데, 이 때는 대다수의 언론과 대중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성과가 지지부진하면서 언론의 관심도 차츰 식어가기 시작했고, 성과가 없으니 대중들의 시선 또한 차츰 혹시나 했더나 역시나였다는 식으로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한국에서의 활동이 사실상 끊기니 두텁던 팬덤도 차츰 흩어지기 시작했고, 그러는 와중에 소녀시대 등 기존 걸그룹의 약진과 레드오션을 이루며 계속해서 데뷔하는 신인 아이돌들의 행보로 인해 국내에서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졌다. 매년 간간이 앨범을 내며 단기간 활동을 하기는 했으나 그 정도로는 전성기 시절의 팬덤을 유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동시기 JYP 사단 전반에 대한 평가가 혹독하게 바뀌면서 원더걸스의 지지부진한 미국 진출 또한 평가가 갈수록 나빠졌다.

결국 2012년에 이르면 박진영 스스로도 인정할 정도로 미국 진출은 사실상 실패였다는 것이 중론이 되어버렸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더걸스의 국내 무대 복귀는 표류한 듯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매년 앨범을 내기는 했으나 직접적인 활동은 거의 없다시피하여 앨범을 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고, 우후죽순 새 아이돌 그룹들이 쏟아져나오는 가요계에서 그 정도의 활동으론 팬덤을 유지하기 어려웠으며, 그나마 제대로 된 활동을 보여주었던 2011년에는 모처럼 만난 라이벌 소녀시대와의 순위 경쟁에서 참패를 거듭하는 등, 위상이 예전같지 않음이 확연해졌다. 실패임이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노선 변경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모습에 팬덤들도 대다수가 등을 돌렸으며, 원더걸스에 대해서는 안티들이 "고인걸스"라는 비하적 별명이 떠돌 정도로 원더걸스나 박진영 둘 다 아예 미국 진출 자체를 놓고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원더걸스의 미국 진출은 현재는 멤버를 스스로도 대놓고 흑역사 취급할 정도로 실패작 취급을 받고 있으며, 섣부른 해외, 특히 미국 진출은 독이 될 수 있다는 선례를 제대로 남겼다. 이 케이스의 중대함 때문인지 방탄소년단, 싸이, BLACKPINK 등이 빌보드 HOT 100에서 각각 1위, 2위, 13위등을 하며 성과를 올린 현재까지도 미국 진출을 당당히 시도하는 가수는 국내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워졌고, 미국병에 걸렸다던 박진영 본인조차 다시금 회사가 활기를 찾은 2020년까지도 미국 진출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 활동에 대한 비판

빌보드 HOT 100을 깬 것은 의미가 있지만, 박진영 언플이 지나쳐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일으키고 있다. 앨범 자체도 옷가게에서 장난감 팔듯이 싸게 판 것이라 인기대로 팔렸다고 보기 힘들고 CD가격을 1달러로 떨이하듯이 했는데, 이런 방식은 사실 미국에서는 굉장히 비난받는 방식이다.

다른 가수들도 매장에서 팔긴 한다. 하지만 원더걸스처럼 무작위로 가격을 깎아서 팔면 누구라도 비난받는다. 가수 레이디 가가는 자신의 앨범 Born this way를 아마존닷컴에서 1달러 미만의 가격으로 팔아 덤핑논란에 휩싸여 여론을 빈축을 산 바 있다. 2012년에는 마돈나 역시 자신의 앨범 MDNA를 자신의 콘서트 티켓에 끼워넣기로 판매해서 논란을 빚은바 있다.

또한 조나스 브라더스의 오프닝 게스트로 같이 투어를 돌 때도 14억 버스, 최고급 대우와 같은 수식어로 보도자료를 돌린 바 있는데 실제로 미국 대우가 좋은 가수들은 전용비행기를 타고 투어를 돌리지 저렇게 버스태워서 투어시키지 않는다. 그 단적인 예로 한창 강남스타일로 인기몰이를 했던 싸이 무한도전에 출연했을 때 공연 후 멤버들을 잠깐 만나기 위해 전용 헬기를 타고 오는 장면이 나온다.

한 술 더 떠서 조나스 브라더스의 공연을 보러온 오바마 부부를 원더걸스의 유명세 때문에 왔다는 식으로 둔갑하는 언플을 시전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당시 코갤을 비롯한 다양한 커뮤니티. 심지어 팬사이트에서조차 까였을 정도.

그동안 이뤘다던 나름의 성과도 2012년 소녀시대가 인터스코프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하며 미국에 무혈 입성하고, 싸이는 미국에 앨범 한 장 안 팔고도 강남스타일로 대광풍을 일으키면서 빌보드 차트 2위라는 금자탑을 쌓아 올리며 그야말로 부관참시를 시전했다. 그리고 원더걸스는 자기 음악 홍보하러 미국 라디오에 나왔다가 말춤을 따라하는 본의아닌 굴욕을 맛보고 말았다. 게다가 그 뮤직비디오에는 현아도 있다.

더군다나 원더걸스의 팬덤은 완전히 와해되어 버렸고, 아시아를 주름잡던 것도 완벽하게 과거의 일이 되어 버렸다. 반면 2009년 초 Gee의 발표 이래 국내에서 꾸준히 활동한 소녀시대가 왕좌를 차지한 이후 걸그룹 춘추전국시대 속에서 왕좌를 지켰다는 걸 생각하면, 원더걸스 입장에서는 천추의 한이 될 것이다. 더군다나 소녀시대는 왕좌를 지키며 천조국까지 노리고 있으니 오호, 통재라. 만약 원더걸스가 왕좌에서 물러나지 않았다면, 소녀시대와 왕좌를 놓고 다퉜을지라도 자연스레 생겨나게 된 K팝의 열풍으로 천조국으로 진출을 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성급한 미국 진출로 한 방에 망했어요......

사실 애초에 이런 문단 자체가 박진영의 뻘짓만 없었더라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문단.

박진영은 2012년 초에 2011년 까지의 미국 활동에 대해서 그로 인해 JYP가 심각한 금전적 손해를 보고 원더걸스도 국내에서 인기를 잃었다며 실패를 인정했다. 비록 많은 경험을 쌓은 것이 이득이라고 발언하고 그 동안 노력한 성과가 나올 것이라며 2012년을 두고보자고 발언하기는 했으나, 회사마저 심각한 금전적 손해를 보았다고 인정한 것은 명백한 상업적 실패를 시인한 것이다.# 원더걸스는 미국으로 '유학'을 간 것이 아니라 '진출'을 한 것이며, 명백히 상업적인 활동이었는데 결산에서 손해를 보았다면 실패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게다가 미디어 이론에 따라 예측해보아도 애초에 실패가 예정된 진출이었다. 확산이론이라는 미디어 이론에 따르면 특정 상품의 시장 진입 결과를 점치기 위해서는 '초기수용자(early adopter)'가 굉장히 중요하다. 상품의 시장진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처음에 '원더걸스'라는 이름을 듣고 바로 구매할 초기수용자의 수(혁신계수)와 초기수용자와 교류하는 과정에서 이들을 모방하여 해당 상품을 구매하려는 사람의 수(모방계수)가 커야 한다. 원더걸스는 자신들의 미국시장 초기 수용자층이라 할 수 있는 K-POP 매니아층에서 충분한 인지도를 얻고 있었다.

그러나 애시당초 미국 시장은 '혁신계수'에 해당하는 K-POP 매니아 수가 아시아 시장에 비해 절대적으로 작고 혁신계수가 낮으므로 당연히 모방계수도 낮아진다. 싸이의 미국 진출 성공은 결과적으로 그가 K-POP 매니아가 아니라 YOUTUBE 내의 유머 동영상을 찾아다니는 모든 유저들을 혁신계수로 잡은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순하고 우스꽝스러운 말춤의 안무는 모방계수를 극단적으로 높여주는 역할을 했다.)

즉, 미국 내 K-POP 매니아 내지는 전문가들이 몇 번 자기 블로그에 포스팅했다고 미국 시장에 진출한 것 자체가 애초에 성공 가능성이 제로였다는 뜻.

국내 정상급의 인지도를 말아먹으면서까지 미국에서 수십 번의 콘서트, 소규모 공연 등으로 굴러서 벌어들인 음원 수입이 500만원이 채 안된다고 한다. 이 정도면 더이상 감싸주기도 힘든 수준.

 

 


 

음반 목록
구분 앨범명 활동곡 발매일
싱글 1집 The Wonder Begins Irony
미안한 마음
2007년 2월 13일
정규 1집 The Wonder Years Tell Me
이 바보
2007 9 2
싱글 2집 So Hot So Hot 2008 6 3
싱글 3집 Nobody: The Wonder Years - Trilogy Nobody 2008 9 22
미니 1 2 Different Tears 2 Different Tears 2010 5 16
정규 2집 Wonder World Be My Baby
Girls Girls
2011 11 7
미니 2집 Wonder Party Like This 2012 6 3
정규 3집 REBOOT I Feel You 2015 8 3
싱글 4집 Why So Lonely 아름다운 그대에게
Why So Lonely
2016 7 5
디지털 싱글 그려줘 그려줘 2017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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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아걸 로고

 

그룹명 Brown Eyed Girls
브라운 아이드 걸스
멤버 제아
( 김효진 [金孝眞] / 81 / 서울특별시 강남구 / O )


미료
( 조미혜 [趙美慧] / 81 / 전라남도 순천시 / A )


나르샤
( 박효진 [朴孝珍] / 81 /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 / A )


가인
( 손가인 [孫佳人] / 87 / 서울특별시 강서구 / B )
데뷔 2006년 3월 2일
정규 앨범 [Your Story]
활동기간 2006년 3월 2일 ~ 현재
소속사 미스틱스토리
(에이팝엔터테인먼트)
팬덤 Everlasting (에버레스팅)

 


 

개요

브라운 아이즈 - 브라운 아이드 소울을 잇는 'Brown Eyes' 시리즈의 세 번째 그룹이다.

쥬얼리의 해체(2014년)로 인해 2020년 기준 사실상 국내 최장수 걸그룹이 되었다.

또한 디바, 베이비복스의 뒤를 이어 세 번째로 가장 많은 정규 앨범을 발표한 걸그룹이기도 하다.

현역 걸그룹 중 유일하게 10년 이상의 기간 동안 멤버 탈퇴/변경/해체가 없는 그룹이기도 하다.

그리고 2020년 현재 대한민국 걸그룹 왕고, 투고, 쓰리고가 모두 이 그룹에 있다.

 

음악적 평가

아이돌 중에선 상당히 독특한 역사를 갖고 있는데, 원래 아이돌이 아닌 보컬 그룹이었으나, 2008년 초 <L.O.V.E.>를 기해 아이돌로 전환한 케이스다.

멤버들의 솔로 활동 때에도 각기 탱고, 하우스 음악, 미디엄 템포, 성가 형식의 듀엣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소화해 내는 역량을 가지고 있는 팀이다.

특히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팀 평균 수준으로서) 걸그룹 가창력 원탑이다.

사실 굳이 가창력을 따지기도 뭐한게 애초에 빅 마마 같은 느낌의 보컬 화음 그룹으로 데뷔한 팀이다.

당장 제아만 봐도 대학 동기였던 이영현과 듀엣을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실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2집 《떠나라 미스김》 때까지는 브아걸의 주요 음악 장르를 소울과 힙합이 융화된 '하이브리드 소울'이라고 소개하고 있었으나, 3집 《Sound-G》부터는 일렉트로니카 뮤지션들이 작곡에 대거 참여하며 일렉트로니카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음악을 구사하고 있다.

 

4집 《Sixth Sense》에 와서는 다시 '하이브리드 소울' 이라는 콘셉트를 언급하고는 있으나, 2집 때처럼 음악 장르로서의 '소울' 이 아니라 영혼이라는 문자 그대로의 뜻에 더 가깝다.

4집의 앨범 사진만 봐도 알겠지만 적어도 4집에 소울 곡은 없다.

그리고 4집은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장르를 정하기는 조금 어려운 앨범이 되어 버렸다.

'하이브리드 소울'을 표방한 만큼 라틴, 재즈, 하우스, 발라드, 힙합 등 이래저래 잡다한 장르가 뒤섞인 앨범.

이후 앨범들부터는 좀더 실험적인 음악을 하고 있다.

앨범이 거듭되면서 점점 초기의 색깔을 잃고 상업적으로 변모해 간다는 비판도 듣고 있지만, 소울이나 R&B는 외면받고 댄스곡은 확실하다 못해 압도적인 성적을 보여주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흐름이다.

같은 시기 활동한 R&B 그룹들의 현 상황을 보면 브아걸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할 수는 없을 듯하다.

다만 단순히 댄스곡으로 선회했다고 해서 상업적이라고 욕하는 비판은 옳지 않다.

오히려 음악적인 평가에서는 이전보다 훨씬 풍성해지고 수준 높아졌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다.

사실 <Abracadabra>가 여러 연예인들이 우스꽝스럽게 패러디하고 희화화 돼서 그렇지 곡 자체는 굉장히 잘빠진 일렉트로닉 팝이라는 칭찬을 많이 받았다.

심지어 브아걸을 지금의 위치에 올려준 앨범 《Sound-G》는 한국의 그래미로 통하는 한국대중음악상에서 그해 최고의 일렉트로니카 송 부분을 시상받기도 하였다.

춤 실력도 춤을 전혀 추지 않았던 그룹이었던 만큼 춤을 잘 추는 이미지가 없었지만 2009년 이후로 수준 높은 퍼포먼스와 함께 가끔 군무가 안 맞긴 해도 춤 실력도 늘어났다.

오히려 과거의 천편일률적인 소몰이 붐에 편승한 채 활동했다면 여타 그룹들과 마찬가지로 노래 몇 개만 알린 그룹으로 조용히 사라졌을 수도 있다.

멤버들 역시 나름대로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이 원하는 음악들을 선보이며 꾸준히 음악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가인은 솔로 활동을 꾸준히 성공시킨 덕분에 이제는 여성 솔로 가수들 중 하나로 근사하게 자리매김 하였고, 미료 역시 자신의 장기를 살려 쇼미더머니의 심사위원도 맡거나 언프리티 랩스타 3에 참가하는 등 나름대로 자신들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데뷔 10년이 넘은 지금 시점에서는 결과적으로 이런 선택이 그룹의 생명력을 지속시키고 음악적인 폭을 넓혀준 셈이다.

 

결성 과정

흔히 제아더러 "브아걸의 창조주"라고 하는데, 이는 사실이다. 동아방송예술대학 영상음악과를 다니고 있던 제아가 현재 브아걸 멤버들 중 첫 번째로 내가 네트워크의 연습생으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가수  영지의 추천으로 알게된 미료의 수준급 래핑이 탐이 났고 그것은 내가 네트워크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미료 허니 패밀리의 객원 래퍼로 데뷔했었는데 뜨지는 못했지만 몇몇 매니아들이 '저 여자 래퍼 누구지?' 하는 궁금증을 가질 정도로 개성 있으면서도 뛰어난 래핑을 보여줬다. 이에 제아는 앨범을 내주겠다는 말로 미료를 낚아 (...) 내가 네트워크에 들어오게 한다. 미료의 브아걸 합류 시점은 정확하지 않지만 여러 발언들로 추정해 보면 소속사에 들어간 지 약 4년 후에 데뷔한 것으로 보인다. 즉, 2002년 즈음에 내가넷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보컬 한 명, 래퍼 한 명이라는 조합은 불안하기 그지 없었고 철이와 미애도 아니고 아무리 제아의 보컬 역량이 뛰어나다지만 당시 빅마마, 버블 시스터즈, 씨야 등 대세를 이루던 것은 여성 솔로보다는 다양한 색깔을 가진 여성 보컬 그룹들이 만들어 내는 하모니였다. 이에 내가 네트워크는 제아와는 다른 색깔을 가진 보컬을 찾아나선다. 이때 제아는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 실용 음악 학원에서 만났던 나르샤를 기억해 낸다. 이름이 같아서 서로 기억한 것도 있고 무엇보다 나르샤의 미성이 강하게 기억에 남았던 제아는 미니홈피를 통해 나르샤에게 연락을 취한다.

제아가 연락하기 전까지 나르샤의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어려운 가정 형편에 가수의 꿈을 포기하지 못해 들어갔던 소속사는 망해버려서 솔로 데뷔를 힘겹게 준비하다가 모든 작업이 다 날아간 판이었다. 특히 나르샤는 경제적으로 안 좋았기에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제아한테 연락을 받았을 때도 옷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 제아가 오디션 연락을 하니 나르샤는 정말 뛸 듯이 기뻤다고 한다. 그리고 오디션 합격 통보를 받자 믿을 수가 없어서 몇 번이고 제아에게 정말 합격이 맞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그리고 제아는 합격 맞다고 제발 그만 좀 물어보라고 화냈다고

마지막 멤버인 가인은 제2의 신화를 발굴한다는 명목 아래 진행되었던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인 배틀신화를 통해 발굴했다. 정확히는 1회 오디션에서 낙방한 뒤 성질이 나 화장실에서 대걸레를 패던 것을 내가 네트워크의 안정훈이 발견해서 오디션을 보게 했다. 아니 그런데 가인은 여자 화장실에 있었을 텐데 안정훈은 어떻게... 처음에는 데모 테이프를 보내게 했고 데모 테이프가 합격점을 받아 브라운 아이드 걸스 멤버들과 다른 작곡가들이 가인의 오디션을 직접 진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가인의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만 듣고 큰 체구의 여성을 연상했던 사람들은 작은 체구의 여고생이 들어오자 경악했다고 한다.

여하튼 이렇게 멤버를 확정한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테스팅을 위해 만들어진 팀이 "크레센도"였다. 크레센도는 주로 홍대 클럽들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했는데, 네 명이 모인 상태에서 시작한 게 아니라 나르샤와 제아가 먼저 듀엣으로 공연을 시작하고, 그 뒤 미료가 합류한 뒤 마지막에 가인이 합류했다. 간혹 이 과정 때문에 브라운 아이드 걸스가 원래 홍대에서 활동하던 인디 그룹이며 나르샤 제아가 시작한 그룹이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이 아니며 브라운 아이드 걸스는 철저히 기획된 팀이다. 인디 그룹이 아니라는 사실은 소속사에서도 강조를 했으며 천 번이 넘는 테스팅을 거친 팀이라고 했을 뿐이다.

 

2021년 - 15주년

활동하는 걸그룹 중 최초로 데뷔 15주년을 맞이하였다. 2021년 현재 나르샤와 제아는 개인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으며, 미료와 가인은 감감무소식이였다가 15주년 기념 편지로 팬들에게 안부를 전했다. 

 

여담
  • 미료를 제외한 멤버 전원이 서울특별시 출신이다. 서울 출신인 3명도 전부 한강 이남 출신이다.
  • 성형으로 유명하다. 멤버들 성형은 전체적으로 2집 때 완료되었다. 이후에 조금씩 손본 것은 있지만, 의느님의 기적으로 불리는 나르샤의 경우 1집과 2집 과도기에 대부분 성형이 끝났다. 성형이 화제가 되어 인터넷에서 쉽게 1기, 2기, 3기로의 발전상을 찾아볼 수 있다. 위에 말했다시피 사실 초창기의 브라운 아이드 걸스는 지금처럼 TV와 예능에 자주 나오며 홍보하는 그룹은 아니었다. 이전 공연들의 동영상을 보면, 외모는 지금보다 조금 촌스럽지만 멤버가 바뀐 것이 아니다 2006년 무대같은 경우 브아걸의 포스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데뷔 초기에는 소속사의 강력한 의지로(...) 일찌감치 외모로 승부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외모도 일부러 안 꾸미고, 가능한 방송에 얼굴을 덜 보이고 노래 관련으로만 활동을 하는 등 얼굴 없는 가수의 콘셉트로 활동하였었다. 후일 연예가 중계에서 나눈 인터뷰 중 가인은 사기 당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여담으로 개그 콘서트에 왕비호 만나러 두 번이나 출연했는데, 그때 왕비호가 "어유 많이 바뀌었네" 라고 말했다. 심지어는 멤버들의 얼굴이 앨범을 낼 때마다 계속 변화무쌍하게 바뀌어 기수를 뽑아 그룹 활동을 하는 말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본인들은 이제 그걸 갖고 자학 개그를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성형 전 1기, 조금 했을 때 2기, 그리고 지금은 5기라나... 성형 사실을 두고 찧고 까부는 세간의 작태에 대해서는 SNL에 출연해 매우 쿨하게 깠다. 참고.
  • 히트곡은 항상 이민수 작곡가, 김이나 작사가 콤비와 함께한다는 징크스 아닌 징크스가 있다. 다만 '어쩌다'가 용감한 형제와 작업한 곡이긴 하다. 하지만 여기서도 작사는 김이나 작사가였다. 이 두 사람 역시 브아걸에 가지고 있는 애정은 대단한 듯.
  • 사실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가장 고민하게 되는 그룹이고, 팬들도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앞으로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사실 이 그룹이 아이돌 취급 받는다는 것은 빅 마마가 아이돌로 변신한 것과 마찬가지다. 원래 그룹 자체가 빅 마마의 영향을 받았던 만큼 지금의 노선 변경은 올드 팬들에게는 참 이래저래 착잡한 상황. 특히 아이돌 그룹의 생명줄은 결국 무슨 병크짓을 하든 앨범을 사주는 충성도 높은 팬들이다. 하지만 브아걸의 경우는 이 팬덤의 크기 자체가 너무 작다. Abracadabra는 노래와 콘셉트가 워낙 훌륭했기에 대박을 쳤지만 이런 대박이 앞으로도 날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 그렇기 때문에 올드 팬들은 저기 이제 그만 하면 됐으니 다시 보컬 그룹으로 돌아와서 우리끼리 오순도순 잘 살아봐요라 말하고 싶지만 한 번 먹힌 걸 포기하고 해 봤더니 안 되는 걸 다시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잘 알기에 팬들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거기에 새로 영입된 팬들은 아이돌 팬클럽의 성격을 띠고 있기에 계속 이런 모습을 보여주길 원하고 있다. 진정으로 진퇴양난.
  • 예전 소속사인 내가 네트워크 아이유의 소속사인 로엔 엔터테인먼트와 사실상 합병하면서, 아이유와는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아이유의 팬들도 브아걸의 팬들도 환영하는 분위기인데 사실 브아걸의 팬들 중 일부는 불만을 가지기도 한다. 현재 브아걸이 부족한 것은 소속사의 파워가 부족해 별로 받쳐 주지 못하는 홍보와 언플, 그리고 실력 행사 인데 아이유의 성장 과정을 보면 로엔 엔터테인먼트가 이 분야에서 딱히 내가 네트워크보다 나은 게 없어 보이기에 불만을 가진다. 하지만 이미 합병은 벌어진 일이고, 자본력을 확보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 돈도 없던 옛날보다는 나은 언플과 홍보를 보여주길 팬들은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인이 Apop엔터테인먼트로 이적하면서 팀에 균열이 생길 것으로 우려되었으나, 다행히 남은 멤버들도 같이 이적하면서 우려를 불식시켰다.
  • 소녀시대 카라에 가려져서 그렇지 브아걸 역시 K-POP 붐 날조설 추적이라는 불쏘시개 혐한 만화에 등장했다. 그 만화에서 작가는 브아걸의 소속사인 D사가 일본의 재계 인사, 관료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주장한다. 아마도 D사는 내가 네트워크인 듯한데 그저 웃길 뿐이다.
  • 브아걸이 옛날부터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나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많은 MC들과 프로그램을 하게 되었는데, 이 중 브아걸 팬들이 싫어하는 MC는 이창명 신동엽. 이창명이 진행하는 출발 드림팀 2기에서 가인이 팔을 다쳤으며, 신동엽의 경우는 달콤한 밤에 브아걸이 출연한 적이 있는데... 취급이 정말 안습이었다. 바로 전 회에서의 소녀시대에 대한 대우와 정말 심하다 싶을 정도로 대우가 달랐다. 소녀시대가 대세인 점은 브아걸 팬들도 인정하는 바였지만 그날 브아걸에 대한 대우는 그야말로 소녀시대 방송 나가고 남은 시간 때우는 자투리 정도였다. 같이 출연한 김종국이 개그도 다 가로채서 김종국 역시 욕을 먹었다. 그래서 브아걸 팬들은 달콤한 밤이 망했을 때 축제를 벌였으며, 출발 드림팀 역시 때를 기다리고 있다. 2016년, 출발 드림팀이 종영했지만 그 사이에 팬덤이 물갈이 되어 별 반응은 없었다.
  • 일본에서 This Is My Style이라는 제목의 DVD를 발매하였다. 1시간 분량의 영상과 100페이지 정도의 사진집이 내용물이나, 일본에서만 발매하였기 때문에 가격이 좀 비싸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이런 거 왜 발매 안 하느냐는 아쉬움이 자자하다.
나르샤 미료 제아
  • 가인을 제외한 모든 멤버가 맥심 화보를 찍었다.
  • 원더걸스와 악연 아닌 악연이 있는데, 원더걸스의 Tell Me 때문에 정규 2집 《떠나라 미스김》을 아예 말아먹었고 1년 뒤 "L.O.V.E"로 다시 재기에 성공하여 "어쩌다"로 재미를 보려는 찰나에 Nobody 때문에 8주 연속 2위라는 대기록을 수립하게 되었다.
  • Sixth Sense》 후반부에 질러주는 고음 덕분에 "머라이어 캐리 수준의 하이 노트 구사, 충격!"과 같이 오버하는 기사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하이 노트'란 그냥 직역하면 '높은 음(...)'이란 뜻의 관용적인 표현이고 휘슬 레지스터(Whistle Register)가 정확한 명칭이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휘슬 레지스터'란 그 돌고래 소리가 나는 음역대를 나타내는 것. 물론 '하이 노트'가 그 돌고래 소리(...)를 가리키는 관용구이기는 하다. (당최 무슨 소린지 감도 안 오고 궁금하다면 당장 머라이어 캐리의 'Emotions' 를 들어라)
    머라이어 캐리는 전성기에 5옥타브 솔#(G#7)까지 아주 가뿐하게 찍어줬다. 거기에 Emotions를 들어보면 알겠지만 5옥타브 솔(G7)을 한 노래에서도 몇 번씩 올리던 머라이어 캐리와 비교했을 때 브아걸의 경우는 노래 전체에서 단 한 번 등장. 4옥타브 파(F6). 그것도 가인과 나르샤를 보면 알겠지만 조금 힘겹게 올린다.
  • 물론 그렇다고 브아걸의 실력을 까는 거야말로 에러. 머라이어 캐리 그 시대를 풍미한 월드 와이드 디바고 당장 브아걸의 경쟁 상대인 대한민국 걸그룹들 내지는 보컬 그룹들 중 브아걸의 실력을 무시할 만한 그룹이 없다. 그리고 브아걸에서 가장 음역대가 넓은 보컬리스트는 제아인데, 제아는 하이 노트를 부르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제아의 경우는 3옥타브 파(F5)를 매우 빈번하게, 나르샤도 2~3번 정도 진성으로 내고 있으며, 진성으로 상위권 메인보컬들도 매우 힘들어하는 3옥타브 라(A5)까지 올렸다... 보통 가요 여자보컬의 노래가 높아 봐야 주로 진성으로 3옥타브 파(F5)인데 이 노래 'Sixth Sense'에서는 곡의 앞부분에 레(D5)가 등장하고 있다. 게다가 상당히 빡센 춤을 추면서 라이브를 한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팬들의 입장에선 경이로울 지경. 다만 머라이어 캐리에 필적한다는 소리는 브아걸이나 브아걸 팬 입장에서도 기분이 좋다기보단 부담스럽기만 하다는 이야기.
  • 1위 복이 너무 없다. L.O.V.E 도 높은 순위에 비해 1위는 쥬얼리의 "One more time"에 가로막혀 4번 밖에 하지 못했으며 브아걸보다 팬덤이 더 단단했던 쥬얼리는 10번이 넘게 1위를 했지만 정규 2집을 망치고 갓 앨범을 낸 브아걸은 당연히 팬덤이 작았기에 활동 후반기에는 2위에 만족해야만 했다. 또한 어쩌다는 위에서 서술했듯이 8주간 2위를 차지하며 인기에 비해 1위는 전혀 하지 못했다. 그나마 아브라카다브라로 1위를 차지했지만 역시 카라 2NE1 등 아이돌에 가로막혀 연간 차트 3위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10번이 넘게 1위할 성적에 5번으로 활동을 마무리해야 했으며 이후 활동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5집은 f(x)의 명반 Pink Tape 활동과 맞물려 1위는 커녕 1위 후보에도 못 들었다. 만약 에프엑스와 붙지 않았었더라면 5집의 음방 활동이 좀 더 길어졌지 않겠느냐는 소리가 간간히 보인다. 6집에 대해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팬덤이 작아서도 있지만 공백기와 시기를 너무 못 잡아 인지도에 비해 1위는 커녕 2위만 많았다.
  • 2018년 3월 2일 데뷔 12주년을 기념해 리더인 제아가 대표로 넷의 마음을 모두 모아 손편지를 써서 팬카페에 올렸다. #
  • 대중들에게 짙은 섹시 컨셉의 성인돌로 유명하지만 정작 섹시 컨셉을 강조한 것은 아브라카다브라, 식스센스, 킬빌 뿐이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소몰이가 흥하던 시대에 맞춰 나온 1, 2집, 발랄한 컨셉의 hold the line과 오아시스, 청순하고 밝은 컨셉의 Love와 어쩌다와 My Style, 청순하고 어두운 컨셉의 Sign과 클렌징크림, 강렬한 걸크러시 컨셉의 식스센스, SF 판타지 컨셉의 신세계까지 상당히 다양한 컨셉을 기반으로 활동해왔다.
  • 멤버들 중 단 한 명도 장녀가 아닌 사람이 없다. 자매가 있는 사람도 한 명도 없으며, 오직 무남독녀   남매 중 첫째로만 이루어진 그룹이다.
  • 멤버들 전원이 자신의 고독방에 소속되어있는 보기 드문 걸그룹이다. 미료를 마지막으로 모두 자신의 고독방에 소속되었으며, 다들 부방장 자리 하나씩 차지하고 계신다. 멤버들도 고독방이 신기한지 고독방에 활동 관련해서 스포일러를 미리 해주거나 사진을 찍어서 올려주는 등, 활동을 꽤 하고 있는 편이다.
  • 음원시장에서 선공개라는 개념을 알리게 한 장본인이다. 2008년 어쩌다 선공개곡 You는 멜론 연간차트 52위에 정착하였으며, 2009년 abracadabra 선공개곡 Candy Man은 멜론 연간차트 77위를 기록했다.
  • 멜론 연간차트 2년 연속 TOP3를 기록한 유일한 걸그룹이다.

 


 

정규 앨범
집수 앨범명 활동곡 발매일
1 Your Story Second
다가와서
20063 2
2 떠나라 미스김 너에게 속았다 20079 6
3 Sound-G Abracadabra 2009년 7월 21일
3집 리패키지 Sound-G Sign Sign 200910 29
4 Sixth Sense Sixth Sense 20119 23
4집 리패키지 클렌징크림 클렌징크림 2011년 11월 07일
5 Black Box KILL BILL 2013 7 29
6 Basic 신세계 2015 11 5

 

기타 앨범
구분 앨범명 활동곡 발매일
디지털 싱글 Hold The Line Hold The Line (Feat. 조PD) 2006년 5월 30일
디지털 싱글 내가 여름이다 Vol.01 오아시스 (Feat. 이재훈) 2007년 6월 21일
미니 1집 With L.O.V.E L.O.V.E 2008 1 17
미니 2집 My Style 어쩌다 2008 9 16
디지털 싱글 My Style Hidden Track My Style (Hidden Track) 2008년 10월 30일
디지털 싱글 Brown Eyed Girls The Original 한 여름 밤의 꿈 2012년 7월 17일
리메이크 RE_vive 내가 날 버린 이유
원더우먼
2019 10 28
디지털 싱글 2019년 겨울 첫 눈으로 만든 그댈 2020년 눈으로 다시 만들 순 없겠지만 2019년 겨울 첫 눈으로 만든 그댈 2020년 눈으로 다시 만들 순 없겠지만 2020년 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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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얼리 프롤로그

2020. 5. 3.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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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얼리 로고
쥬얼리 1기
쥬얼리 2기
쥬얼리 3기
쥬얼리 4기

 

1기 박정아 이지현 정유진 전은미
2기 서인영 조민아
3기 김은정 하주연
4기 박세미 김예원

 

그룹명 JEWELRY
쥬얼리
멤버 박정아 (1~3기)
( 朴貞雅 / 81 / 경상북도 영천시 / A )


이지현 (1~2기)
( 張佑赫 / 83 / 경기도 고양시 / B )


서인영 (2~3기)
( 徐寅永 / 84 / 서울특별시 송파구 / O )


조민아 (2기)
( 趙敏兒 / 84 / 경상남도 창원시 / B )


하주연 (3~4기)
( - / 86 / 서울특별시 / A )
 
김은정 (3~4기)
( - / 86 / 인천광역시 / B )
 
김예원 (4기)
( 金藝元 / 89 / 경기도 성남시 / O )
 
윤진솔 (4기)
( 박세미 / 90 / 광주광역시 / A )
데뷔 2001년 3월 30일
정규 앨범 [Discovery]
활동기간 2001년 3월 30일 ~ 2015년 1월 7일
소속사 스타제국
공식색 펄 네이비
팬덤 보석상자

 


 

개요

2001년 데뷔해 14년 동안 활동한 대한민국의 걸그룹.

그러나 팬덤보다는 대중적 인기에 치중한 나머지 대표곡을 꼽으라면 'Again', '니가 참 좋아', 'Superstar', 'One More Time' 4곡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중적 인기는 확실해서 'Superstar'가 1위를 수상한 것을 기점으로 'One More Time' 또한 뮤직뱅크 7주 연속 1위라는 기록을 세우며 대상을 수상하는 저력을 보였다.

'모를까봐서' , 'Love Story' 같은 발라드곡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소속사는 그 악명 높은 스타제국이었다.

놀라울 정도로 기획력이 형편없었음에도 가끔씩 한두 명씩 얻어걸리는 것을 보면 천운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팬덤 관리 능력이 최악인데 데뷔 후 박정아가 탈퇴할 때까지 9년간 단독 콘서트 한 번 없었다.

공식 팬카페와 팬카페가 따로 놀고, 회원수를 합쳐야 만 명이 채 안 되는데 사실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Superstar'로 전성기를 구가할 때 팬클럽 '보석상자'는 회원 수가 10만 명에 이르는, 팬덤이 아주 작다고는 할 수 없는 그룹이었다.

하지만 2006년 이지현의 탈퇴로 흔들리더니 운영자가 팬카페를 돈 받고 팔아버렸다.

게다가 조민아마저 탈퇴를 해버리면서 쥬얼리 해체가 기정사실화되면서 팬덤은 사실상 붕괴된다.

거기다 소속사의 방관 정책까지 한 몫 했다.

'One More Time'으로 대박을 쳐놓고 팬덤 관리도 제대로 안 하고 행사나 돌리고 있으니...

 

그룹의 콘셉트

이 그룹을 뭐라 정의하긴 어려운데 쉽게 말해 그냥 대세를 잘 따르는(...) 그런 그룹이었다.

즉, 음악적으로 크게 특색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소속사가 영세하다 보니 대중성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그 이유.

즉, 대중성에 영합하는 센스 있는 곡 선정과 컨셉트로 승부하는 그룹이라는 것.

그래도 5집 즈음에는 걸그룹 중에서도 굉장히 안정적인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6집에서는 기획력이 이전에 비해 다소 못 미쳤고 그룹 자체가 오래되어 브랜드가 하락하다 보니 그리 좋은 성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박정아와 서인영이 있을 때는 음색 자체가 타 걸그룹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보니 팜므파탈이나 여전사 컨셉을 해도 상대적으로 강렬해보이는 효과가 있던 것은 사실.

어찌되었든 간에 빈약한 팬덤과 멤버들의 낮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앨범을 낼 때마다 어느정도 히트했다는 것은 어느정도 시사할 점이 있음을 보여준다.

충성심 높은 여성 팬덤을 다수 보유할 수 있는 남성그룹과 달리, 라이트한 남성 팬층이 많은 여성 그룹은 대중성이 우선이라는 것.

실제로 2008년 'One More Time'이 대박을 쳤을 때 팬카페 회원수가 3천명이었다. (그 이유는 슈퍼스타가 초대박을 친 후 공백기에 들어갔던 2006년 즈음 10만명 가까이 육박하던 팬카페의 주인이 카페 매매를 했다.)

 


 

3기 이후의 쥬얼리 멤버들

 

정규 앨범
집수 앨범명 타이틀곡 발매일
1 Discovery 이젠 2001년 3월 30일
2 Again02 Again 2002년 7월 31일
3 Beloved 니가 참 좋아 2003년 7월 5일
4 super star Super Star 2005년 3월 15일
5 Kitchi Island One More Time 2008년 2월 20일
6 Sophisticated Vari2ty 2009년 8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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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클 프롤로그

2020. 5. 3.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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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클 로고

 

그룹명 Fin.K.L
핑클

(FinKilling Liberty)
멤버 이효리
( 李孝利 / 79 / 충청북도 청원군 강외면 / A )


옥주현
( 玉珠鉉 / 80 / 서울특별시 강남구 / O )


이진
( 李眞 / 80 / 경기도 수원시 / B )


성유리
( 李在元 / 81 / 독일연방공화국[서독] / O )
데뷔 1998년 5월 20일
정규 앨범 [Blue Rain]
활동기간 1998년 5월 12일 ~ 2005년 1월 10일
소속사 대성기획 (現 DSP미디어)
공식색 펄 레드
팬덤 핑키

 


 

개요

1998년 5월에 대성기획 소속으로 데뷔한 대한민국의 4인조 걸그룹이다.

지금까지도 많은 걸그룹 후손들의 컨셉트와 이미지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그룹이다.

핑클은 청순함, 귀여움, 성숙함으로 어필하며 여러 곡에서 매번 다른 컨셉트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핑클이 만들어낸 걸그룹 컨셉트의 구도는 지금도 많은 걸그룹들이 시도한다.

그리고 2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S.E.S와 함께 후배 걸그룹들이 롤모델로 삼고있는 그룹이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2000년대 중반 이후에 등장했던 2세대 및 그 이후 세대 걸그룹은 말할 것도 없고, 핑클과 S.E.S가 등장한 직후에 등장했던 1세대 걸그룹들마저도 이들을 롤모델로 삼았다는 데 있다.

그만큼 전설(레전드)로 통하고 있다는 것.

또한, 마지막 정식 활동 후 14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신곡 '남아있는 노래처럼'이 각종 음원 사이트 상위권을 차지하는 등 두드러지는 존재감을 자랑하는 그룹이다.

 

정규 4집과 마티즈 2 광고모델 계약 종료 이후 활동도 중단하고 핑클이 지금까지 음반활동이 없어서 해체한 그룹이라고 얘기를 많이 하는데 앞에서 언급했지만 핑클은 공식적으로 아직 해체 안 한 현재 한국 최장수 아이돌 걸그룹이며 또한 멤버 전원이 핑클은 아직 해체 안 했다면서 단호하게 못박고 있다.

그런데 최장수라는 말은 라이벌인 S.E.S.가 재결합하는 바람에 애매해져버렸다.

하지만 각자 소속사도 달라졌고 서로의 활동 범위가 너무나 판이해졌기 때문에 2005년 디지털 싱글 'FIN K.L' 이후 지금까지 후속 앨범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해서 사실상 해체 상태나 다름없는 상황이긴 하다.

그래도 2007년 이효리 생일파티와 2008년 성유리 생일파티 때 네 명이 함께 출연하거나 이효리 첫 번째 단독 콘서트 때 이진, 성유리, 옥주현이 깜짝 출연해 넷이 이벤트 무대를 벌인 적은 있다.

성유리는 핑클 얘기가 나오면 되도록 언급을 피했으나, 2008년까지 여전히 핑클 멤버임을 수차례 못박아왔고, 2013년 DSP festival에선 영상으로 "앞으로도 계속 저희 핑클도 많은 관심 부탁한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진은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으나, 2009년 이진이 핑클 결합을 원치 않는다는 오보가 난 후 오보라는 사실을 피력하기 위해 팬사이트에 글을 쓴 적도 있다.

특히 이효리, 옥주현의 경우엔 매년 꾸준히 "핑클은 해체하지 않았다"고 말을 해왔다.

과거 소속사인 DSP조차 "현재 소속사가 다를 지라도 굳이 핑클이란 이름으로 넷이 활동하는 것에 대해 제재하지 않겠다"고 했다.

게다가 2004년 3월 DSP 사장 이호연이 특허법인을 통해 핑클 상표를 등록하기 위해 서류를 제출하였으나 2005년 6월 거절당한 기록이 남아있다.

즉, 핑클이라는 이름의 상표권은 DSP에게 없을뿐더러, 그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므로 굳이 앨범이 나오지 않더라도 이런 산발적인 이벤트는 일어날 수도 있다.

사실 핑클의 위력은 각자의 길을 떠난 후에 증명되었다.

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그룹 해체 후 솔로로 전향할 때 큰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핑클의 멤버들은 모두 자신의 새로운 자리를 확고히 잡았고, 연예계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계속 다져나갔다.

 

2019년 7월, JTBC 캠핑클럽을 통해 14년 만에 완전체로 예능 활동을 했다. 참고로 단체 예능은 2005년 1월 10일 야심만만 이후 최초다.

 

데뷔 전

대성기획에서 젝스키스 다음으로 야심차게 기획한 아이돌. 본래에는 같은 회사 출신의 중고신인 김준희를 기반으로 그녀가 리더를 맡아 한국의 TLC로 결성하기로 되어있었고 그에 맞춰 훗날 '타샤니'로 데뷔하게 되는 '애니' 등 힙합 삘이 제대로 나는 연습생들이 있었지만, 이후 이호연이 그룹 컨셉을 힙합에서 귀여운 댄스 그룹으로 가기를 원해서 원년 멤버들이 모조리 탈퇴하게 되었다고 한다.

1997년 하반기쯤 합류한 옥주현은 이미 이문세 별이 빛나는 밤에 별밤뽐내기 연장원 출신이었다. 라디오에서 옥주현이 부른 머라이어 캐리의 'Hero'를 들은 대성기획 사장 이호연이 직접 옥주현과 컨택해서 핑클 첫 멤버로 합류시켰다. 옥주현은 성악을 전공하여 대중가수에는 생각이 없었으나 이호연 사장의 설득을 통해 연예계에 발을 딛게 된다. 옥주현이 힐링캠프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이호연은 옥주현을 처음 보고 왜 이렇게 뚱뚱하냐고 돌직구를 던졌으나, 옥주현은 나는 성악하는 사람이니 상관없다고 맞받아쳤다고 한다. 그러자 이호연은 너 아이돌 시켜준다는데 뭐가 싫냐며, 여자는 살빼고 쌍꺼풀 수술 하면 확 바뀐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또한, 젝스키스 콘서트를 공짜로 보여주며 꼬셨다. 그런데 데뷔 날짜가 다가오는데도 수술을 안 시켜주다가 뒤늦게 시켜줘서, 데뷔하고 쌍꺼풀이 부은 채로 활동했다.

그 이후로 옥주현은 핑클 결성에 많은 부분에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데, 이진 역시 옥주현이 캐스팅해 온 멤버다. 이진은 은광여자고등학교 2학년 재학시절 강남 일대에서 유명한 얼짱 물론 당시에는 얼짱이란 단어가 없었다. 당시 사용되던 단어는 킹카&퀸카 이었는데, 옥주현의 친구가 이진과 아는 사이였다. 그래서 옥주현은 직접 은광여고로 찾아가서 단역 연기자 출신인 이진에게 오디션을 볼 것을 요청했고 너! 내 동료가 돼라 에코의 '행복한 나를'을 부른 이진은 핑클의 두 번째 멤버가 되었다.

성유리는 1997년 5월 교내 사생대회에 나갔다가 김동완, 유진, 이효리, 김상혁 등등을 캐스팅한 바 있는 캐스팅디렉터에 의해 발굴되었다. 당시 캐스팅 디렉터는 눈에 띄는 미인이었던 성유리에게 명함을 주면서 젝스키스가 있는 곳이라고 했으나, 성유리는 그 당시 서울대 의예과와 성균관대 의대를 동시에 합격한 친오빠의 영향으로 의사가 꿈이었고 나름 모범생이었기 때문에 가수가 될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 9월에 부모님 몰래 대성기획에 오디션을 보러간다. 당시 옥주현이 성유리의 오디션을 보았고, 이호연은 옥주현의 말을 듣고 핑클 멤버로 합류시켰다. 이때 성유리의 말로는 처음엔 옥주현의 성숙한(...) 외모 때문에 멤버가 아니라 음악 선생님인 줄 알았다고

남은 한 자리엔 '애니'부터 시작해서 영턱스클럽의 멤버 전현정 및 후에 클레오로 데뷔하는 멤버 채은정  많은 가수 연습생들이 거쳐갔지만 모두 핑클과는 인연이 되지 못했으며, 옥주현, 이진, 성유리 3명은 확실하게 모였지만 소속사 사장의 고집으로 꼭 4인조로 데뷔해야 했고 세 명이 캐스팅 된 이후 긴 시간 동안 네 번째 멤버를 발탁하기 위해서 공을 들였다. 이 모 기획사에서 힙합그룹을 준비하는 중이던 이효리가 마지막으로 그룹의 멤버로 확정되었다. 

이효리는 당시에도 주변 지역에 소문난 유명인이었고, 압구정동 레스토랑에서 알바하던 중 캐스팅 디렉터에 의해 발굴되었다. 힐링캠프에서 이효리가 밝힌 바에 따르면, 어느날 대뜸 '나 이호연이요'라고 전화가 와서 사장을 만났다고 한다. 만나서는 노래나 춤 하나도 안 시켜보고 얼굴만 보고 바로 뽑았다고 한다. 참고로 이효리는 과거 H.O.T. 팬이어서 SM 회사 앞에서 토니안을 기다리다가 SM에 캐스팅되어 연습생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이효리가 과거 몸담고 있던 회사에서 이효리를 상대로 부적절한 계약을 하고 있던 점을 파악한 DSP 측이 이효리의 가능성을 높게 판단하여, 쿨하게 위약금을 던져주고 이효리를 데려오면서 핑클의 마지막 멤버가 되었다. 최근 한 방송에서 룰라의 이상민, 샵의 이지혜가 같은 소속사(당시 월드뮤직)에서 연습생으로 있던 것을 기억한다며 말하기도 했다.

이후 PC통신에서 그룹명 공모를 받아 "핑클"로 정했으나 이걸로는 부족했던지 상단과 같은 거창한 짬뽕 단어의 약자를 핑클로 부르자고 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그룹명 공모 같은 건 안 하는 게 좋다

그렇게 이 4명의 소녀는 핑클로서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기록
  • 걸그룹 최초로 가요대상을 2회 수상하였다.
  • 걸그룹 최초로 단독 콘서트를 개최하였다.
  • 아이돌 걸그룹 최초로 가요대상을 수상하였다.
  • 1999년 12월 평양에서 개최된 SBS 평화친선 음악회에 참여함으로써 걸그룹 최초로 평양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
  • 1999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30세 미만의 국민이 뽑은 10대 가수상'과 '30세 이상의 국민이 뽑은 10대 가수상' 두 부문에 모두 올랐다.
  • 2000년 MBC와 한국 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30세 미만이 뽑은 10대가수’와 ‘30세 이상이 선정한 10대가수’에 조성모와 함께 동시에 선정되었다. #
  • 2000년 4월 MBC 드라마 <이브의 모든것> OST의 메인 테마인 'True Love'를 불렀다. 이로써 핑클은 아이돌 최초로 드라마 OST에 참여하게 되었다.
  • 2000년 9월 남미 가이아나 공화국에서 핑클 우표가 발행되었다. 이러한 스타 우표는 93년 엘비스 프레슬리 우표를 시작으로 마릴린 먼로, 제임스 딘, 마이클 잭슨, 마돈나 등의 우표가 발행되었으나 국내 연예인을 대상으로 우표가 발행된 것은 핑클이 처음이다. 이 우표는 미국과 동남아 지역에서도 판매되었다.
  • 2001년 '당신은 모르실거야'가 지상파 3사 음악프로그램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였다. 5월 13일 SBS '인기가요'를 시작으로 19일 MBC '쇼! 음악중심'의 전신인 '음악캠프'를 거쳐 31일 KBS 2TV '뮤직뱅크'에서 1위에 올랐는데, 이는 2013년에 인피니트가 '맨 인 러브'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기 전까지 마지막 그랜드슬램 기록이었다. 두 기록의 시기 차이는 무려 12년이다.
  • 2004년 SBS 스타의 전당에 선정되어 SBS 목동 신사옥에 조성된 스타의 거리(Star Street)에 핑클 멤버들의 핸드프린팅이 있다. #
  • 2005년 1월 10일에 멤버 전원이 SBS 야심만만에 출연하여 평균 시청률 24%를 기록하였다.
  • 2005년에 Forever Fin.K.L DVD가 발매되었는데 이는 걸그룹 최초로 제작된 DVD이다.
  • 2017년 7월 빌보드지가 선정한 위대한 역대 걸그룹송 100(100 Greatest Girl Group Songs of All Time)에 3집 수록곡 나우(Now)가 88위로 랭크되었다. # #

 

여담
  • 1세대 아이돌 4대천왕 중 유일하게 범죄자가 없는 그룹이다. 그만큼 멤버 모두가 철저히 자기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
  • 평균 신장이 상당히 높은 걸그룹이다. 이효리가 164cm로 팀내 최단신이고 나머지 2명은 최소 168~169cm 이상에 최장신 옥주현은 173cm에 달한다. 이는 2020년 현재 활동중인 모든 걸그룹을 다 해도 최상위권에 드는 키이며, 무려 20년 전에 결성된 그룹이라는 걸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장신군단이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해 활동기간도 일부 겹치던 S.E.S.를 보면서 너무 이쁘고 요정같아서 주눅이 들었다가 '괜찮아 우린 떡대가 있잖아!' 하면서 으쌰으쌰했다는 얘기를 본인들 스스로 하기도...그런데 그냥 봐도 커 보이는 옥주현에 나머지 멤버들이 묻히는 감이 있는데 이들은 얼굴이 작고 귀여운 상이라 화면상으로는 커보이지 않는다.
  • 네 멤버 모두 오빠가 한 명씩 있다. 옥주현을 제외한 세 멤버는 모두 막내인 것도 특징. 옥주현은 남동생도 한 명 있는 3남매 중 둘째이며 캠핑클럽에서 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 이름과 나이가 공개되었다.
  • 의료계에 종사한 가족들이 유독 많다. 이효리 둘째 언니는 전직 성형외과 간호사, 이진 언니 역시 간호사였고, 성유리 엄마도 독일에서 간호사로 근무하였으며 친오빠는 성균관대학교 의대 1기 졸업생으로 현재 삼성병원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다.
  • 이효리의 프로필상 생일은 5월 10일이지만 실제 생일은 3월에 있다고 한다. 3월 며칠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로써 핑클은 멤버 전원의 생일이 3월에 있다.
  • 2000년 KT와 협약을 맺어 핑클의 멤버들이 당시에는 대중적이던 공중전화 카드의 모델으로도 발행이 되었다. 15종의 공중전화 카드가 발행되었다. 2000원 권 1종, 3000원 권 10종, 5000원 권 1종, 10000원 권 3종이 발행이 되었다. 2000원 권 50000장, 10000원 권 각 100000장, 3000원 권 150만 장, 5000원 권 50000장. 16년의 세월이 흐른 2016년에는 생각보다도 구하기 힘든 물건이 되었다.
  • 2001년에 발매된 토니 호크의 프로 스케이터의 국내에 정식 발매된 PC 패키지에서는 핑클 네 명의 모습을 딴 캐릭터로 플레이할 수 있다. 멤버별로 기존 능력치와 스킬이 다르게 설정되어 있고 핑클의 히트곡도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게임 캐릭터의 모습이 실제 멤버들과 그다지 닮지 않았다.#
  • MBC 드라마 <이브의 모든 것>의 메인 주제곡인 'True Love'를 불렀는데 핑클이 부른 걸 모르는 사람이 많다. 트렌디 드라마에 어울리는 명곡.
  • 포맨의 5집 수록곡 'Star'는 성유리의 팬이었던 작사가가 성유리를 생각하며 쓴 노래라고 한다.
  • 핑클도 아는 국군의 주적이라는 불쏘시개 국방홍보만화가 한때 그 괴이함으로 방송을 타 유명해지기도 했다. 정작 핑클 멤버들은 자기들 이름이 이런 만화에 쓰이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 "핑클 효과"라는 말도 돌았는데, 핑클이 예능에 나오면 그 프로그램 시청률이 꽤 상승한다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SBS에서는 심지어 핑클 이름으로 예능을 뽑은 적도 있었는데, 그게 <핑클과 가자가자>였다. 이 프로그램은 평균 시청률이 20%가 나오기도 했다. 또한 단체활동을 종료한지 한참 뒤에 완전체로 출연한 2005년 1월 10일자 <야심만만> 시청률은 평균 24%를 기록하기도 했다.
    사실 이건 핑클 멤버 전원이 예능감이 상당히 좋은데다 서로 케미나 팀워크가 끈끈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일단 센터이자 리더이며 제일 인지도가 높은 이효리부터가 명실상부 예능인 취급 받을 정도로 예능감이 훌륭했고, 이진의 경우 나서서 뭘 하진 않지만 어딘가 허당스러운 모습으로 멤버들에게 장난어린 디스를 받거나 뻣뻣댄스, 할렐루야, 아다지오 등등의 예상치 못한 활약으로 레전드 웃음을 주는 일종의 몰이캐릭터였다. 성유리는 데뷔 초에 카메라를 쳐다보지도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 언니들을 과감히 디스하며 의외의 예능감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탄생한 본인도 싫어하는 흑역사 훌라후프 옥주현의 경우엔 혼자 나오면 말을 잘 하지만 4명이 동시에 나오면 상대적으로 덜 웃긴 편이었는데 특유의 화통하고 넉살 좋은 성격으로 멤버들의 기행이나 드립을 잘 받아주거나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큰 웃음을 주는 서포트 역할을 주로 수행했다. 아무튼 이들의 예능감이 핑클의 대중적 인기를 더 공고히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 역시나 이런 여자 아이돌은 예나 지금이나 남자 아이돌의 빠순이에게 공공의 적이었지만, 핑클은 다른 그룹들과 달리 자기들한테 달걀을 투척했던 핑클 안티 팬을 한 명 낚아채서 밴으로 압송, 반강제로 협박(…)을 하여 반성문을 쓰게 하는 등 안티들에 대한 대응 능력이 대단했다.
  • 같은 소속사인 젝스키스의 팬클럽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2000년 젝스키스가 해체되자, 젝스키스의 팬클럽이 젝스키스의 해체는 핑클 탓이라면서 싸잡아 공격했던 적도 있다. 젝스키스가 해체하기 이전에도 젝스키스 팬클럽 회원들의 대부분은 "이호연 오빠들이 번 돈을 저 X들에게만 쓴다."고 주장(혹은 생각)하며 핑클을 싫어했다. 당시 PC 통신에서는 일부 회원이 젝스키스와 핑클이 함께 출연한 지상파 방송에서 핑클 팬클럽의 응원을 방해하려고 계획을 짜던 일이 발각된 적도 있었다. 심지어 핑클을 구타하겠다고 핑클 집에 찾아간 X들도 많았고, 싸인회에 침범해서 이효리와 이진에게 달걀이나 돌멩이를 던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공개 방송이 끝나고 오프라인으로 욕설을 투척하는 일도 많았다. 당시 올라온 글들을 보면 좀 심하다 싶은 것들도 보인다. 오늘날 보면 손 발 오그라드는 수준의 주작 글을 올리며 핑클과 클릭비를 천하의 개쌍놈으로 만들거나#, # 이효리가 이호연 애를 낙태해서 핑클한테 대상줬다는 식의, 오늘날 같으면 바로 고소미 먹을 비방 글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젝스키스의 해체에 관한 자세한 것은 젝스키스 항목 참조 바람. 잘못을 따진다면 DSP에 따져야지 핑클의 잘못으로 탓할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핑클도 계약서 없이 거의 무계약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에서 활동했으니 핑클이라고 대우가 마냥 좋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이건 핑클의 잘못은 일절 없다.
  • 핑클 매니저였던 길종화가 멤버 네 명의 호르몬 주기를 다 알고 그에 따라 과격한 야외촬영을 조정해줄 정도로 세심한 언니, 엄마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그래서 핑클 멤버들은 길종화 매니저를 종화 오빠가 아닌 종자 언니라고 불렀고# 길종화 매니저는 이렇게 부르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 포트리스2가 국민 게임이던 시절 핑클맵이 나온 적이 있다. 근데 특이하다면 특이한 게 이미 핑클 팬덤까지 거의 와해된 상황에서 그 맵이 나왔다는 것. 대체 무슨 의도야? 이후 비인기 맵을 정리하는 업데이트에서 삭제되었다. 양옆에 3층이 없어 최대 높이가 낮고, 대신 아랫층의 두께가 조금 더 두껍다는 점만 빼면 당시 국민 맵인 스핑크스와 별 다른 점이 없어서 금새 묻혀버렸는데, 삭제된 원인이 여기에 있을 듯. 때문에 랜덤 방이 아니면 정말 보기 힘든 맵이었다. 전체적인 컬러는 분홍색이었다.
  • 2015년 1월 12일 방송된 <힐링캠프>에서 핑클 멤버 전원이 동시에는 아니지만 서로 전화로나마 대화를 했다. 여전히 서로 돈독함을 과시하며 불화설을 일축했다. 대화로 미루어보건데 각자 배우로서, 가수로서 각자의 위치에서 잘 나가는 입장으로서 서로 바쁘다보니 연락이 소홀해지고 불화설이 떠오르니 그에 더 부담스러워져 연락이 더 줄어들어 버렸던 듯하다.
  • 핑클의 불화설은 제3자들에 의해 생성되고 부풀려진 면이 있다. 그리고 동시대에 활동했던 다른 아이돌 그룹들과 달리 완전체로 방송에 출연한적이 없었던 것도 이들의 관계를 의심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사실 제기된 불화의 원인들도 객관적으로 보면 말이 안된다.
  1. 이효리와 이진의 싸움. 이 싸움은 1998년 때의 일이다. 그때 싸운게 진작에 난것도 아니고 10년이 넘어서 불화설의 원인이 되는게 말이 되는가. 이효리 본인도 싸운 후 잘 지냈다고 말했었다.

2. 술 문제. 이효리만 술을 좋아해서 달랐다고 하는데 예능에서 이효리가 말한 시점은 1998년이다. 이때는 다른 셋은 모두 미성년자였다. 이후 옥주현은 이효리랑 같이 술마시고 놀러 다녔다고 했고 성유리는 그정도는 아니지만 같이 술을 오래 마셨다는 일화가 있다. 동생들이 고민상담을 하면 불술을 먹여주고 부침개를 직접 치워주기까지 했다

3. 결혼식 문제. 불화설이 커진 계기인데 이효리의 결혼식때 핑클 멤버들이 참석 안했던 것. 하지만 이 당시 이효리랑 친한 지인들도 대부분 불참이었다. 그리고 이후 이진의 결혼식때 옥주현 외에는 모두 불참했고 성유리는 아예 알리지 않고 결혼했다.

4. 토토가 불참. 불화설의 최고조. 물론 이유는 있었다. 옥주현은 뮤지컬 공연 중이었는데 무한도전 촬영날과 겹쳤다. 성유리는 영화 촬영 중이었기 때문에 본인한테 온 섭외 전화에서 거절했다고 밝혔다.

5. 이효리가 막판에 들어와서 다른 멤버들이 싫어했다는 설. 결성과정을 보면 알겠지만 컨셉을 바꾼 후 항상 4인조로 데뷔를 해야해서 다들 이효리를 기다렸던 상황이었다. <캠핑클럽>에서 밝히길 말도 너무 빨리 놨다고 한다.

사실 흩어진 후 이들의 행보를 보면 문제가 없다는건 알 수 있다. 2011년까지 매년 한번씩은 만남을 이어왔고 같이 모인 사진도 종종 공개 됐다.

따지고 보면 이효리가 떡밥을 던져줘서 생긴 일이긴 하다. 본인 생각으론 그땐 그랬지 의도였겠지만. 핑클팬이면 이효리와 이진이 초반에 싸운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머리끄덩이 사건에 대해 크게 생각 안했지만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겐 오해의 소지가 있었고 하필이면 의심될만한 상황들이 연이어 일어났으니.

  • 핑클이 파리바게트 광고를 위해 파리바게트에서 만든 CD게임에 등장한 적이 있다. 옛날 물건이라지만 퀄리티가 너무 처참하다(...).
  • 핑클을 모델로 한 게임 ‘패스트푸드(게임)' 도 있었다. 가게 이름을 정할 때 'FInKL'로 하면 핑클을 직원으로 채용할 수 있다.
  • 2010년에 개최된 제 1회 서울문화예술대상에서 이효리는 대중음악가수 부문 대상을 옥주현은 뮤지컬배우 부문 대상을 수상하여 한 아이돌 그룹에서 동시에 두명의 대상 수상자가 있는 전무후무한 일이 발생하였다.#
  • 2014년 <무한도전 -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특집에서 이효리, 옥주현 등을 찾아가는 장면이 나왔다. 메인 보컬 옥주현이 95점을 받아 일단 핑클의 출연이 확정되었으나...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
  • 이호연 사장과 나름 좋은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이호연 사장이 뇌출혈로 쓰러지고 병실에 누워 있을 때, 핑클 4명이 모두 찾아와서 이호연 사장이 좋아하던 노래 "루비"를 불러주며 눈물 지었다고 한다.# 2013년 5월 29일 라디오스타에 이효리가 출연해서 말하길, 사장님과 매우 친분이 두터워서 회사가 어려워 월급이 밀리면 다음에 상황 좋아지면 달라고 쿨하게 넘어갔다고 한다. 이외에도 솔로 1집이 대박난 이후로는 이효리가 예전과 달리 싫은 건 싫다고 하자, 이호연 사장이 이효리한테 '아. 네! 이 사장님'거렸다는 말도 있다. 성유리는 <무릎팍도사>에서 데뷔 때 신인으로서는 받기 어려운 좋은 대우를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고, 회사에서 나갈 때도 매우 원만히 나가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옥주현은 2015년 핑클 회동 당시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리며 핑클의 성공에 이호연 사장 역할이 컸음을 밝히기도 했다. 
    "오랜만에 옛날 이야기 보따릴 펼쳤더니 재미난 일들이 많긴 하다. 넷은 여러모로 세고 특이했다. 이상하리만큼 운이 좋았다, 우린. 가수가 되고 싶단 큰 꿈도 없이 캐스팅된 아이들. 노래 안 되고 춤도 안 되는데 '연습생 시절'이란 것도 없이 그 상태로 데뷔를 시킨다고… 망할 거라고 확신하며 아무 기대도 겁도 없이 세상에 나왔다. 예상대로 데뷔 곡 '블루레인'은 큰 집중을 받지 못했지만 좌절하지도 않았다. 당연하다고 생각했기에. 우리 사장님은 갑자기 말도 안 되는 곡으로 방향을 바꿔 빛의 속도로 일을 진행했다. 뮤직 비디오를 찍던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이런 옷을 입고, 이런 유치한 가사를 립싱크하라니. 이걸로 앞으로 방송도 해야 하냐고. -이것봐 나를 한번 쳐다봐. 나 지금 예쁘다고 말해봐-콜미 콜미 콜콜 기 붜 코올 -난 니 거야- 우린 모두 하기 싫은 티를 뚝뚝 묻혀가며 했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터질 줄이야…! 그 이후 고공행진. 노래 춤 실력을 키워야 하는데 예능의 절대 강자로 시청률을 제압하던 핑클은 잠자는 시간, 가요 프로그램 출연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예능 촬영에 몰두. 노래 연습은 안녕… 춤은 모두가 따라 출 수 있는 걸로. 오늘 밥 먹으면서 저 위의 내용으로 웃음꽃이 활짝 폈다. 신기하지 않냐며, 잠깐 꿈을 꾸고 깨어난 것 같다며. 갖춰진 것도 없이 운이 억수로 좋았던 건 말이 안 되는 걸 되게끔 옆에서 애써준 사람들의 공이 크다고…FBI에서 훈련 받는 것보다 우리 넷을 케어하는 게 몇 배는 더 고통스러웠을(^__^) 매니저 오빠들. 불도저 이호연 사장님. 오늘 귀 좀 간지러우시겠다. 핑클을 에워싼 숲이 되어준 그대들에게 고맙고 보고 싶고 미안하고… 넷이서 이야기 나누며 많이 그리워했어요. 오겡키데스카."
  • 데뷔 21주년 핑클, 완전체로 캠핑클럽에서 뭉친다. #
  • 이효리, 옥주합(?), 최진(?), 옥유리(?)로 이루어진 4인조 걸그룹이라고 한다. 옥씨가 두 명이나 있는 그룹
  • 영화감독 이병헌이 핑클 헌정 영화를 제작하고 싶다고 밝혔다.#
  • 핑클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효리가 잡고 이끄는 그룹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효리는 핑클 내 서열 꼴찌다. 서열 1위는 막내인 성유리. 당시 표현만 없었을 뿐 걸그룹 막내온탑의 시작은 이분이다. 기 쎈 걸로는 어디 가서 안 밀리는 이효리, 옥주현과 이들만큼은 아니지만 만만한 성격은 아닌 이진 이 세 사람이 다 성유리 앞에서는 동생 바보다. 캠핑클럽을 보면 언니들이 다 성유리를 이뻐하는 걸 알 수 있다.아직도 18살로 생각하는거 같긴 하지만.
  • <캠핑클럽>에서 활동 중단의 이유가 짧게 나왔는데 당시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과 달리 핑클이 활동할 당시에 아이돌들은 활동을 오래 하지 않았고 dsp에서의 마지막 활동 시기 핑클 멤버들의 나이를 보면 이효리 27살, 옥주현과 이진 26살, 성유리가 25살로 모든 멤버가 곧 20대 후반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 활동하기엔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4회 출연하여 당대의 아이돌들 중 최다 출연했다. 이소라의 프로포즈는 오직 라이브만 취급했고 비가수들도 출연했지만 가수에 한해서는 이소라가 엄격했기 때문에 출연하기 어려운 방송이었다.
  • 1세대 아이돌들 중 제일 늦게 다시 뭉쳤기 때문에 제일 오래 걸렸다는 인식이 있는데 각각 기간을 계산해보면
    god -> 11년/9년, 젝스키스 -> 16년, 
    S.E.S ->14년, H.O.T.-> 17년, 핑클 -> 14년 
    보면 알 수 있듯이 다른 그룹들에 비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하지만 기다린 팬들한테는...
  • 핑클 그룹명의 사용에 제약이 없다. 사실 원소속사에서 이적한 경우 그룹명 사용은 어려운 문제다. 핑클의 경우 2004년 dsp에서 상표권을 등록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이후 아무도 등록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핑클은 고유명사의 취급을 받게 되었고 이젠 아무도 핑클의 상표권을 등록할 수 없다고 한다. 즉 핑클은 이효리, 옥주현, 이진, 성유리의 그룹으로 고유명사가 된 것이다.
  • 사실 이효리는 다른 세명이 찍힌 사진을 보고 합류를 주저했다고 한다. 솔직히 그 사진 진짜 못 찍었다. 그래도 결국 합류하기로 하고 첫만남을 가졌을때 옥주현, 이진, 성유리는 이효리의 외모와 몸매에 놀랐고 성유리는 속으로 '됐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근데 동시에 이효리는 성유리를 보고 안심했다고.
  • 2002년 이후 활동을 중단했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음악방송 활동은 4집 2002년이 마지막이지만 핑클로서 활동은 2005년까지 했다. 2005년 1월 야심만만에 단체로 출연했고 10월에는 디지털 싱글 앨범 <Forever Fin.K.L>을 발매했다.
  • 핑클의 노래를 후배 아이돌들이 리메이크 하거나 커버를 하는데 제일 많이 하는 곡 3개를 꼽으면 <내 남자친구에게>, <Now>, <화이트(White)>다. 
    <내 남자친구에게>는 전형적인 소녀스러움을 어필하는 곡이기 때문에 신인 걸그룹들이 많이 커버한다. 
    <Now>는 정말 많은 후배 걸그룹들이 커버하고 리메이크도 했는데 소녀시대, 원더걸스, 카라, 티아라, 포미닛 등 어지간한 2세대 걸그룹은 다 커버를 했고 게다가 3세대인 트와이스, 마마무도 커버를 했다.
    <화이트(White)>는 겨울하면 떠오르는 명곡으로 후배 가수들이 겨울 시즌에 많이 커버를 한다.
    근데 의외로 제일 성적이 좋았던 <영원한 사랑>은 거의 없다. 추측하자면 옥주현의 파트를 감당 못해서 인 듯.
  • 후배 걸그룹 중에서 소녀시대 와 교류가 많다. 같이 방송 출연도 많이 했고 소녀시대 멤버들이 옥주현의 뮤지컬 공연에 찾아오고 같이 찍은 인증샷도 많다. 사적으로 보면 이효리와 유리, 윤아는 이효리가 제주도 본인의 집으로 부르는 사이다. 유리와 같이 고량주를 밤새 마시고 이후 생긴 잔해물을 이상순이 치웠다는 일화가 있다. 윤아와는 같이 <효리네 민박2>를 촬영했다. 옥주현은 소녀시대의 데뷔 초창기때 멘토 역할을 해주었다. <김승우의 승승장구> 소녀시대편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티파니와 서현이 옥주현과 많이 만나는 사이다.
  • 성유리는 다양한 헤어스타일에 심지어 머리에 꽃을 심기도 했다. 본인말로는 이뻐보이는 줄 알았다고. <가면의 시간> 무대 영상을 보면 산다라박을 연상시키는 헤어스타일을 한적이 있었고 산다라박의 원조가 성유리네라는 댓글이 있었다.

 


 

정규 앨범
집수 앨범명 활동곡 발매일
1 Fine Killing Liberty : BLUE RAIN Blue Rain / 내 남자 친구에게 / 루비(淚悲) : 슬픈 눈물 1998년 5월 20일
2 White 영원한 사랑 / 자존심 / Waiting For You 1999년 5월 12일
2.5(비정규) S.P.E.C.I.A.L 나의 왕자님께(To My Prince) / 화이트(White) / 가면의 시간 1999년 11월 24일
3 Now Now / Feel Your Love 2000년 10월 6일
3.5(리메이크) Memories & Melodies 당신은 모르실거야 / 늘 지금처럼 2001년 4월 13일
4 call me in your heart ...can be my soul show you love again 영원(永遠) / Don't Go Away 2002년 3월 8일

 

싱글 앨범
구분 앨범명 곡명 발매일
디지털 싱글 Forever Fin.K.L FINKL 2005년 10월 26일
싱글 앨범 남아있는 노래처럼 남아있는 노래처럼 2019년 9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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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 S.E.S
에스이에스

Sea.Eugene.Shoo
멤버 바다
( 최성희 [崔成希] / 80 /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 / AB )


유진
( 김유진 [金楢眞] / 81 / 서울특별시 노원구 / A )



( 유수영 [柳水永] / 81 / 일본 카나가와현 요코하마시 / A )
데뷔 1997년 11월 24일
정규 앨범 [I'm Your Girl]
활동기간 1997년 11월 28일 ~ 2002년 12월 19일


2016년 11월 28일 ~ 2017년 1월 1일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
공식색 펄 보라
팬덤 친구 (Friend)

 


 

개요

1997년 11월 28일에 SM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데뷔한 대한민국의 3인조 걸그룹이다.

1세대 대표 걸그룹 중 하나인 S.E.S.는 이미지뿐만 아니라 음악까지 인정할 수 있는 아이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0년대에 이르러도 음악과 컨셉, 이미지 등 많은 부분에 있어 걸그룹 후손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으며, 대중성과 음악성을 동시에 잡은 그룹.

몇 세대의 아이돌을 거치는 동안 대한민국 가요계에 등장한 수많은 걸그룹의 시초에는 S.E.S.가 있었다.

S.E.S.는 미래에 등장한 걸그룹들이 나아가는 방향의 모델이 되었고, 멤버들의 성장과 더불어 음악도 함께 성숙해지는 모습으로 대중들의 기대를 충족시킨 S.E.S.는 대한민국 걸 그룹 시대의 화려한 시작을 알렸다.

 

S.E.S.는 데뷔부터 해체까지 큰 잡음이 없었고, 유진이 '친자매나 다름없다'고 할 만큼 해체 후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등 여러 면에서 이상적이고 긍정적인 걸그룹의 길을 걸었다.

 

팀 내에서 역할은 바다가 메인보컬, 유진이 비주얼, 슈는 일본담당으로 나뉘어 있었다.

데뷔초부터 각종 언론과 방송에서 멤버 각각의 매력에 맞는 여성상을 부여하여 소개했는데 바다는 귀여움, 유진은 청순함, 슈는 여성스러움을 담당하였다. 이후 2008년에 《불후의 명곡》에 출연해서 다시 한번 밝힌 내용이기도 하다.

 

영원한 가요계의 요정이란 소리를 듣고 있지만, 사실 대놓고 요정 컨셉으로 나간건 2집 뿐이다.

1집은 사랑스러운 여자친구 컨셉이였으며 3집부터는 요정보다는 세련된 도시 여자 이미지가 더 강했다.

하지만 워낙 2집 때의 요정 컨셉이 강렬한 임팩트를 가지고 있었고 또 본인들도 활동 당시 요정이미지에 대한 강박관념에 언제나 시달렸다고 하는데, 이때는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서 주로 주유소 화장실을 이용하였으며 심지어 유진같은 경우는 탄산음료나 커피조차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활동한 모든 타이틀곡들과 후속곡들이 커버된 걸그룹. 1집에서 5집까지 활동한 모든 타이틀곡들과 후속곡들 모두 TV 무대, 라디오, 각종 오프라인 행사 등에서 노래와 댄스가 커버되었다.

심지어 3집의 팬서비스로 메들리로 활동한 샤랄라와 활동하지 않은 5집 수록곡 달리기도 커버되었다.

대한민국 역대 걸그룹들중에 활동한 모든 타이틀곡들과 후속곡들이 다른 걸그룹들이 커버해서 음악적으로 사랑받은 걸그룹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결성 과정

1996년 이전에도 우리나라 가요에선 여자 가수들이 미약하게나마 있었는데 1993년에는 S.E.S.같은 춤추고 노래하는 아이돌 형태의 최초의 걸그룹이라 할수있는 애플이라는 3인조 걸그룹이 나왔다. 

바로 몇주 후 CF 모델 출신들로 결성한 S.O.S라는 4인조 그룹이 나왔고 같은해에는 처음으로 언론 걸그룹으로 소개된 중앙대학교 연극영학과 4학년생들이 만든 칼라라는 그룹으로 1993년 강변가요제에서 "후회하고 있는거야" 라는 데뷔곡으로 대상을 받았다. 

칼라는 당시 걸그룹이라 불렀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빅마마같은 보컬 그룹이라 할수 있기 때문에 춤추고 노래하는 아이돌 형태의 최초 걸그룹은 애플이 시조새라 할수있다. 대중가요계 걸그룹 선풍여성그룹 가요계 새바람

1994년에는 윤현숙과 이혜영의 2인조 그룹 코코, 1995년에는 3인조 그룹 쎄쎄쎄, 1996년에는 비비 뚜띠라는 2인조 그룹이 등장하여 인기를 끌었지만 오늘날의 걸그룹 컨셉과는 차이가 있었다. 사실, 위의 사례는 걸그룹이나 아이돌 컨셉보다는 듀오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여전히 여자 가수가 히트곡을 내는 건 1년에 두세번 있을까말까한 일이었고,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부터 20위까지 남자 가수들이 싹쓸이했을 정도로 여성 가수라 입지를 굳히기에는 너무나 척박한 환경이었다. 박미경, 강수지, 신효범, 엄정화, 이소라 정도가 명맥을 유지하며 순위에 이름을 올리는 정도였다. 위에서 언급한 1993년 언론에 걸그룹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여성 그룹의 존재 자체는 거의 없었고나왔다고 해도 우정의 무대에 몇 번 출연해서 인기를 잠깐 누리다 사려져갔을 뿐이었다.

당시 여성 그룹, 특히 여성 아이돌 그룹 쪽의 시장은 우리나라 음반 기획자들이나 레코드사들에겐 미지의 땅과도 같았다. 영국의 스파이스 걸스, 일본의 SPEED, 미국의 TLC와 같은 걸그룹들이 수백 수천만장을 팔아치우며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며 많은 제작사들이 의욕적으로 여성 그룹을 기획하고 도전했지만, 결과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레이블 반도음반에서 내놓았던 걸그룹 애플(아이돌), 일본식 아이돌을 표방하며 해외 진출까지 시도했던 4인조 S.O.S, 한국의 TLC를 꿈꿨던 에코, 삼성뮤직의 후원아래 홍콩에서 데뷔했던 이뉴, 1998년 2집 야야야 부터 즉 데뷔 1년 후 부터 인기를 얻은 베이비복스 1기까지 많은 그룹들이 데뷔했지만 성과가 만족스러운 걸그룹은 한 팀도 없었다. 남성 팬들의 호주머니를 열게 하기엔, 여성 그룹 시장의 진입 장벽은 너무나 높았다.

당시 현진영 유영진을 발굴하고 H.O.T.를 데뷔시키며 선견지명을 과시했던 SM의 이수만은 여성 아이돌 그룹 시장의 잠재성을 인식하고 1996년 가을 무렵부터 걸그룹 프로젝트를 기획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앞선 수많은 여성 그룹들의 선례를 보면서, 여학생 팬들이 확보되어있는 남자 그룹들과는 달리 맨몸으로 부딪쳐야 하는 여성 그룹은 조금이라도 어설프게 보여서는 씨도 안 먹힐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여성 댄스 그룹을 기획하면서 2년동안 자그마치 1만명이 어떤 잡지에선 무려 3만명 넘는 소녀들을 오디션했다는 사실이 SM의 신중했던 준비과정을 말해준다. 오랜 오디션 끝에,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3명의 소녀들이 선발되었다. 안양예술고등학교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한 최성희, 괌 교포 출신의 김유진, 일본 가나가와현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유수영. 가창력은 다소 부족했지만 외모, 춤실력은 좋았던 유진, 슈와 가창력 멤버였던 바다까지 또한 외국어 구사 능력까지 고려된 결과였다.

당시 S.E.S. 후보였던 연습생은 총 8명으로, 바다가 먼저 리드 보컬로 정해지고 난 뒤, 유진과 슈가 서브보컬로 정해졌다.

바다는 안양예고 재학 시절 교내 축제 무대에 선 것을 계기로 이수만에 의해 발탁되었다. 원래 바다는 뮤지컬 배우를 꿈꿨으나 아버지의 병환으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대학 진학이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데, 이수만이 대학 학비 전액을 지원해 주면서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가수 준비를 하게 됐다. 유진은 H.O.T.의 화보집 촬영차 괌에 갔던 캐스팅 디렉터와 이수만의 눈에 띄어 발탁이 되었고 슈는 god 손호영, 데니 안, NRG 김환성과 함께 혼성 그룹을 준비하던 중 롯데월드 지하상가에 놀러갔다가 S.E.S. 제의를 받게되면서 둘을 남겨두고 먼저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다. 세 사람에겐 각각 바다, 유진, 슈라는 이름이 주어졌고, 각자의 이름자를 따서 S.E.S.라는 팀명이 결정되었다..

오랜 준비와 투자, 트레이닝 기간을 가졌던만큼 S.E.S.에게 좀 더 야심적인 음악이나 화려한 이미지를 씌워 줄 법도 했지만 SM은 오버하지 않았다. 오히려 S.E.S.를 통해 보여진 것들은 무척 심플하고 소박한 것이었다. 이것저것 다 하려 했던 다른 여성 그룹들과는 달리, SM은 히트곡을 만들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공식에 충실했다. 곡이 좋을 것. 노래를 잘할 것. 가수가 매력적일 것. 그리고 다른 요란한 이미지들 대신 그 바탕 위에서 극도의 세련미를 추구했다. 가수의 외모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깔끔하고 청순한 이미지로 단장되었고, 꽉 짜여진 안무와 감각적인 뮤직비디오가 보태졌다.

 

해체

2002년 12월 19일, SM 엔터테인먼트에서 유진이 SM을 떠나 독자적인 활동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함으로서 S.E.S.의 해체가 공식화되었다. 당시 SM은 유진과 바다가 SM과의 재계약을 포기했기 때문에 S.E.S.로 더 이상 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것처럼 언플을 했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부분은 회사와 두 멤버간의 재계약 불발로 인해 팀이 깨지는 것이 아니라 멤버 셋 모두가 S.E.S.라는 팀을 마무리하고 개인적인 미래를 준비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후 인터뷰에서 바다는 '세 멤버의 동의로 이루어진 해체'라는 점을 강조하였고, 일본활동을 마감하고 국내 활동을 준비할 당시부터 SM 잔류 여부와 상관없이 각자의 길을 걷기로 이미 합의를 끝낸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해체 발표 당일 S.E.S.의 해체 여파로 SM의 주가가 6.25% 급락했는데, 이에 SM은 그동안 S.E.S.의 음반 판매가 부진했기 때문에 소속사에서 많은 투자를 해오지 않았고 올해 활동이 다소 부진했기 때문에 협상결렬이 전체 매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알다시피 S.E.S.의 음반 판매량은 SM 내에서도 상위를 다투는 수준이었고 2002년만 하더라도 가수 보아에 이어 SM 내에서 두 번째로 높은 음반 판매고를 올렸기 때문에 저런 언플이 먹힐 리가 없었다.

바다는 MP엔터테인먼트와 20억 계약설이 있었으나 양측의 입장차이로 계약이 무산되면서 웅진코웨이개발 산하 웅진 미디어와 5억원에 전속계약을 체결하고, 유진은 S.E.S. 데뷔 당시 SM 엔터테인먼트에서 매니지먼트를 맡았던 정해익과 4억원에 계약, 슈는 그대로 SM 엔터테인먼트와 재계약을 맺게 된다.

 

여담
  • 대한민국 걸그룹 최초로 해외 가요차트 1위를 석권하였다.
  • 한국 대중 가수 최초로 마이클 잭슨과 같은 무대에서 공연하였다.
  • 여가수 최초로 누나 부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 대한민국 최초로 인터넷으로 콘서트 티켓을 예매하였다.
  • 걸그룹 최초로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콘서트 티켓을 매진시켰다. 
    (추후에 많은 걸그룹이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콘서트를 열었으나 티켓 매진은 S.E.S., 블랙핑크, 소녀시대뿐이다)
  • 가요 프로그램에서는 1위를 많이 수상하고 여러 상을 휩쓴 S.E.S.는 아이돌 1세대 6대천왕(혹은 4대 천왕) 중에서는 유일하게 연말 가요 대상과는 인연이 없는데, 주로 연말에 컴백해서 해를 넘겨 활동하다보니 시상식에서 손해를 많이 보는 편이었다. 대표적인 게 신인상인데, 당시 음반 판매량이나 인기로 봤을 때 당연히 전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석권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2집을 발표한 지 얼마 안 됐다는 이유로 후보에서 제외가 되는 등 이래저래 피해가 많았다. 게다가 같은 기획사 내에 H.O.T.라는 절대 강자가 있었기 때문에 여자 가수상은 언감생심 꿈도 못꾸는 상황이었다. 당시 1999년 KMTV 《가요대전》에서 여자댄스가수상 수상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가요대전 당일 KM 측에서 일방적으로 수상을 취소하면서 갑작스럽게 스케줄이 취소돼 버리는 일도 있었다. 이는 연제협과 SM의 불화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 H.O.T.가 전 부문을 석권한 상황에서 무시무시한 H.O.T. 팬들의 심기를 건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나마 만만한 S.E.S.를 희생양 삼아 SM 독점 수상을 저지당한 꼴이었다.
  • 방송의 날 50주년 기념으로 KBS 라디오 《홍진경의 가요광장》에서 104명의 가수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S.E.S.가 총 35표를 얻어 여그룹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뒤를 이어 핑클, 빅마마, 소녀시대, 펄시스터즈&서울시스터즈 순으로 2~5위를 차지했다.
  • 2010년, 음악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겨레에서 실시한 최고의 아이돌 설문조사에서 4위에 선정됐다. 1위는 보아, 2위는 소녀시대, 3위는 빅뱅, 4위는 S.E.S., 5위는 동방신기가 차지했다. 1세대 아이돌로는 유일하게 순위권에 포함됐다.
  • 2014년, 빌보드가 뽑은 역대 K-Pop 걸그룹 TOP 10 중 한 팀으로 선정됐다. 빌보드는 S.E.S.를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케이팝에 엄청난 충격을 준 그룹'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당시 남성 지배적이던 가요계에 태풍을 몰고 온 격'이었다며, '중독적인 비트에 따라 하기 쉬운 가사, 스쿨걸 이미지 등으로 쟁쟁한 히트 메이커들을 재치고 큰 인기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 한창 활동하던 당시 인기 프로그램이던 일요일 일요일 밤에 게릴라 콘서트에는 2번(2001년, 2002년, 둘 다 대구) 출연했는데 두번 다 성공했다. 특히 2001년 출연 때에는 당시 최고 시청률을 기록해서 지금도 S.E.S.하면 게릴라 콘서트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 영원한 가요계의 요정이란 소리를 듣고 있지만, 사실 대놓고 요정 컨셉으로 나간건 2집 뿐이다. 1집은 사랑스러운 여자친구 컨셉이였으며 3집부터는 요정보다는 세련된 도시 여자 이미지가 더 강했다. 하지만 워낙 2집 때의 요정 컨셉이 강렬한 임팩트를 가지고 있었고 또 본인들도 활동 당시 요정이미지에 대한 강박관념에 언제나 시달렸다고 하는데, 이때는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서 주로 주유소 화장실을 이용하였으며 심지어 유진같은 경우는 탄산음료나 커피조차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 1집 활동때는 치마 의상을 전혀 입지를 않아서 팬들조차 왜 치마를 입지 않느냐고 문의 할 정도였다고... 결국 2집 후속곡 <너를 사랑해>부터 치마를 입기 시작한다.
  • 활동한 모든 타이틀곡들과 후속곡들이 커버된 걸그룹. 1집에서 5집까지 활동한 모든 타이틀곡들과 후속곡들 모두 TV 무대, 라디오, 각종 오프라인 행사 등에서 노래와 댄스가 커버되었다. 심지어 3집의 팬서비스로 메들리로 활동한 샤랄라와 활동하지 않은 5집 수록곡 달리기도 커버되었다. 대한민국 역대 걸그룹들중에 활동한 모든 타이틀곡들과 후속곡들이 다른 걸그룹들이 커버해서 음악적으로 사랑받은 걸그룹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이후 같은 소속사 후배 걸그룹인 레드벨벳이 <Be Natural>을 리메이크 했으며, SM Rookies의 여자 멤버들도 <I'm your girl>을 리메이크했다.
  • 남편과 동갑인 멤버()와 남편보다 연하인 멤버(유진), 남편보다 연상인 멤버(바다)가 공존한다. 즉, 연상연하동갑 커플을 동시에 볼 수 있다.
  • 일부 악질 안티들에 의해 S.E.S.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했다는 내용의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으나, 이미 각종 기사와 팬들의 증거 자료를 통해 전면 부정된 사실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커녕 팬들조차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 발단은 1998년 11월에 방송된 SBS 기쁜 우리 토요일에서 S.E.S.가 절 같은 곳에서 사진 촬영하는 것을 두고 신사 참배한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게 된 건데, 촬영 장소가 야스쿠니 신사가 아닌 도쿄의 하마리궁이란 게 밝혀지면서 순식간에 쉰떡밥이 되고 말았다. 팬들에 의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S.E.S.가 촬영한 신사에는 계단이 있지만 야스쿠니 신사에는 계단이 없다는 점 , S.E.S.가 촬영한 신사의 약수물 구조와 야스쿠니 신사의 약수물 구조가 전혀 다르다는 점 등 방송 캡처와 실제 신사 내 사진을 일일히 대조한 결과 야스쿠니 신사와 전혀 무관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무엇보다 논란이 된 영상을 보면 S.E.S.가 나무끈에 흰 천을 매달면서 소원을 비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것이 어떻게 신사 참배를 했다는것인지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다. 안티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매국노니 뭐니 설쳐댄 탓에 괜한 욕을 20년째 먹고 있다.
  • 멤버 전부 SM관계자의 컨택 오디션으로 데뷔하게 되었다.
  • NCT127의 "Dreams come true"는 S.E.S.의 2집 타이틀곡 "Dreams come true"를 오마쥬한 것이다.2분50초 참고
  • 멤버 전원이 딸이 하나 이상 있다.

 


 

 

정규 앨범
집수 앨범명 활동곡 발매일
1 S.E.S I'm Your Girl, Oh, My Love 1997년 12월 24일
2 Sea&Eugene&Shoo Dreams Come True, 너를 사랑해 1998년 11월 23일
3 Love Love, Twilight Zone, 샤랄라 1999년 10월 29일
4 A Letter From Green Land 감싸 안으며, Be Natural, I will... 2000년 12월 23일
4.5 Surprise 꿈을 모아서, Unh Happy Day 2001년 07월 11일
5 Choose my Life - U U, Just a Feeling, 달리기 2002년 02월 14일
6 Friend Soul to Soul 2002년 11월 21일
7 Remember Remember, Candy Lane 2017년 01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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